IT법 소송을 할 때 가장 당황스러운 때는 서면과 증거를 열심히 준비하였는데 “재판부는 본 기술에 관한 이해 부족으로 각 당사자의 주장에 관한 당부 판단이 쉽지 않으니 당사자는 주장·입증을 더 보완하라”는 석명을 받을 때이다. 한편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빈틈없이 서면을 준비하였다고 생각했는데 재판부가 꼼꼼히 검토한 후 내가 예상하지 못한 쟁점을 지적하면서 추가 보완을 요구할 때이다. 이런 경험을 수년 간 하고 나니 IT법 소송에서 유의할 몇 가지 사항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첫째, 내가 설명해야 할 기술과 쟁점을 이해할 수 없다면 재판부도 이해할 수 없다. 의뢰인이 주는 설명을 그대로 옮겨 적기 보다는 내가 충분히 이해하여 재판부의 관점에서 변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술이든 쟁점이든 그림과 표가 포함된 프레젠테이션은 상당한 도움이 된다. 과거 저작권 분쟁에서 ‘저작권침해방지를 위한 기술적 조치(단계별 필터링 등)’의 유형과 기능에 관하여 프레젠테이션을 함으로써 재판을 유리하게 진행했던 적이 있었다.

둘째, IT기술과 쟁점에 관해 이해하기 쉽게 주장하는 것이 겨우 가능해졌더라도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인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당연한 일인데, 기술에 관한 설명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정작 증거를 찾아 제출하는 것을 간과할 때가 있다. 상대방의 주장을 탄핵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셋째, 의뢰인의 설명을 들어도 의문이 들 때가 있는데, 변호사는 기술전문가가 아니니 의뢰인의 말이 어디까지 맞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변호사는 의뢰인을 위해 적극 변론해야 하기도 하지만 법률전문가로서 분별력 있는 판단을 하여야 하므로 이 때엔 공식적이든(감정, 사실조회 등) 비공식적이든(구두질의 등)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적절히 받을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쟁점이나 증거를 발견하기도 한다. 넷째, 변론하고 있는 기술에 관해 정확히 알고 있는지도 스스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년 전 저작권 보호 기술에 관한 세미나에서 어느 변호사가 기술적 설명을 상당히 곁들여 가며 다양한 침해방지 및 인식 기술에 관하여 세밀하게 분석하는 것을 보면서 ‘변호사가 저 정도까지 기술적인 이해와 설명을 할 수 있다니!’라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관련 기술개발회사 대표가 그 변호사의 기술적 이해 수준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이미 기술혁신이 이루어져 그 기술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서, ‘IT 분야에서는 함부로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가 “기술에 대해 모른다”고 말하더라도 ‘정말 모르겠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그 기술에 관해 좀더 알고 싶다’는 뜻일 수 있다. 이러한 재판부는 기술을 둘러싼 쟁점에 관해 기본적인 이해를 넘어 더 전문적인 사항에 관해서 질의하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얼마나 설득력 있게 주장과 입증을 잘 하느냐에 따라 소송의 승패가 달라진다.

IT법 소송은 기술적 쟁점이 당사자의 주장 중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특징이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소송의 기본 원칙에 따라 관련 쟁점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정리하고 각 주장에 대하여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입증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