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앞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군중 가운데 젖먹이의 모습은 단연 나의 눈길을 끈다. “엄마 안녕히 다녀오세요”라고 하며 출근길에 고사리 손을 흔들어주는 우리 딸이 연상된다. 그리고 바로 저렇게 아기였을 때도 생각난다. 나는 1월에 아이를 낳았는데 출산한 지 일주일 후부터 재판을 다니는 등 업무에 복귀하였다. 그렇게 무모하게 복귀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두 가지 지위에서 나오는 두배의 사명감과 용기였던 것 같다.

많은 맞벌이 부부가 그렇지만 아이와 보내는 시간의 양보다 질로 승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고민하던 끝에 모유 수유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모유 수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 간격이 일정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출근해서는 주기적으로 유축을 해야 했다. 그래야 모유 수유를 지속할 수 있고, 또 아이가 집에서 먹을 양을 준비할 수 있었다. 전동유축기, 젖병, 보관팩, 냉동팩, 보냉가방 이 다섯 가지는 언제나 나를 따라다녔다. 출퇴근 때 메는 백팩은 수유 용품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유축간격은 3시간이고 1회에 걸리는 시간은 20~30분. 아이가 크면서 점점 횟수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보통 출근하면 하루 3번 정도 유축을 해야 했다. 서면을 쓰다가도 그 시간이 되면 정지하고, 상담 온 손님은 대기했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정시에 퇴근하였다. 어딜 가든 수유는 내 스케줄의 중심에 있었다.

일종의 족쇄였지만 나는 일을 하면서 수유를 할 수 있다는 점이 감사했다. 무엇보다 내가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것이 참 다행으로 느껴졌다. 최적의 공간은 아니지만 적어도 유축을 할 수는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사무실 밖은 대부분 사정이 녹록지 않았다. 특히 재판을 갔을 때 수유시간이 끼면 유축을 해야 하는데 수유실이 없는 법원인 경우에는 애를 먹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아이가 17개월이 되었을 때 단유를 했다. 아이는 잘 적응하였지만 나는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러나 어쨌든 나를 따라다니던 보따리와도 이별하였고, 더 이상 수유실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모유수유는 나에게 시원섭섭함을 남겼다.

그리고 얼마 전 현직 판사인 대학 후배와 연락을 하게 되었다. 후배는 몇달 전 아기를 낳고 모유 수유 중이다. 나는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후배와 신나게 모유 수유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후배는 곧 복직 예정이라고 했다. 그런데 복직할 법원에 수유실이 없어서 단유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였다. 아기가 아직 단유하기에는 이른 월령이라 후배는 밤늦게까지 나와 이야기를 하며 이런 저런 방법을 연구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 후배도 예전에 내가 가졌던 것과 같은 원동력을 가졌을 텐데 그 힘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작지 않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17개월을 먹이고도 단유를 하며 눈물을 흘렸던 것이 생각났다. 후배는 속상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하였다.

법원에 수유실이 있는 경우도 많이 있다. 하지만 아직 일부 법원에는 수유실이 없다. 수유실은 방 한칸과 의자, 냉난방 시설만 있어도 충분하다. 그런데 왜 없을까. 안타깝고 참 속상한 현실이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