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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나침반]연명치료의향서 제도의 시행에 즈음하여
오세혁 중앙대 법전원 교수  |  ohsehyuk@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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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7호] 승인 2018.02.26  10: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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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4일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사전의료지시(advance directive) 제도가 시행되었다. 환자가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에 이용하는 사전의료지시는 인간의 존엄한 죽음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사전의료지시는 의료 패러다임이 전통적인 의사(醫師)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환자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제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연명치료의향서라는 완화된 용어로 도입된 사전의료지시는 이른바 웰다잉법으로 알려져 있는 ‘호스피스·완화의료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약칭: 연명의료결정법)’의 핵심적인 내용이 되는 것으로서 연명의료계획서와 함께 도입되었다.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환자 등의 의사에 따라 담당의사가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중단 등에 관한 사항을 계획하여 문서로 작성하는 것이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인 사람이 자신의 연명의료중단결 등에 관한 의사를 직접 문서로 작성한 것이다.

그런데 임종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의 중단을 제도화한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 일주일 만에 파행을 빚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의 상황만 두고 보면, 기대와 우려 속에서 시행되었던 사전의료지시 제도는 결국 예상했던 대로 연착륙에는 실패한 듯하다. 이미 연명의료결정법에 대해서는 시행 이전부터 의사 2인의 판단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부터 대리판단 시 동의 대상이 지나치게 넓다는 비판까지 크고 많은 문제제기가 이어져왔다.

이러한 상황은 연명의료결정법이 2016년 2월 3일 제정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대단히 유감스럽다. 일찍이 2009년 신촌세브란스병원 김할머니 사건 때부터 연명치료의 중단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더 그러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학자들이 사전의료지시의 실천적 한계를 지적하면서 그 극복방안에 대한 고민 없이는 사전의료지시가 다양한 부작용을 낳는 것은 물론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쳐 좌초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점을 경고한 한 바 있기에 현 상황은 안타깝기만 하다. 그 와중에 서울대병원은 보건복지부 산하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이 만든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의 사용 절차가 까다로워 이용을 포기하고 우편 접수로 대신하기로 했다고 한다. 혹여 서울대병원의 이번 조치가 사전의료지시 제도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 더 나아가 전통적인 의료 패러다임을 고수하려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오늘날 보건의료에 관심을 갖는 법률가와 법학자들은 자율성 존중의 원리에 기반하여 환자가 자신의 치료방법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갖는다는 점에 대하여 동의하고 있다. 사전의료지시 제도는 생명윤리가 병상(病床)으로부터 법의 영역으로부터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의사가 인간의 건강과 질병에 대한 전문가임은 분명하지만, 죽음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다.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진입했다고 하던 김할머니는 인공호흡기 제거 후에도 200일을 더 생존하였으며, 지속적 식물인간 판정을 받았던 캐런 퀸란은 10년이나 더 생존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연명의료의 중단이 전통적인 의료 패러다임 아래에서 시행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이, 환자도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주권자(主權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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