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시절에 나는 돌을 산 정상에 굴려 올리는 시지프스를 보고 참으로 가슴 아파한 적이 있다. 돌을 정상에 올려놓으면, 다시 아래로 떨어지고, 다시 올려 놓으면, 다시 떨어지고 같은 작업을 영원히 반복해야 하는 시지프스. 왠지 그는 나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전설에 의하면, 시지프스는 자신을 데리러 온 죽음의 신을 묶어버렸다고 한다. 그는 프로메테우스처럼 신을 속인 죄로 영원한 벌을 받게 된 민간전승의 인물이라고 한다. 어떤 작가는 시지프스에 영감을 받아 인간을 부조리한 사회에 던져진 존재로 파악하면서 실존주의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인생의 부조리, 죽음으로 끝나는 허무감 등 절망의 구렁에서 의미를 찾고자 몸부림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를 지극히 인간적이면서도 눈부신 몸부림으로 평가하고 싶다. 거대한 우주의 한 점에 불과한 사람이 자기 삶의 고유한 의미를 찾고자 애쓰고 있다니, 경이스럽지 아니한가!

우리 변호사들도 사건을 처리하면서 때때로 시지프스처럼 고달픔과 무의미함이 밀려올 때가 있음을 숨길 수 없다. 그러나 절대자의 소리는 이에 절망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에 알맞게 이름을 불러주어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라는 뜻일 게다. 창세기에도 절대자가 창조된 피조물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인류의 조상 아담에게 이름을 붙이라 했다.

나는 위와 같이 이름을 붙이는 작업 즉 변호사 업무수행 시 일어나는 사건 사건에 의미를 불어넣어 주는 작업이 변호사의 인생길이라 생각한다.

모든 열정을 바쳐 열심히 변론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불만스러울 때, 피의자나 피고인의 억울한 사정을 몰라주는 수사나 재판을 볼 때, 법리를 궤변으로 도배하여 무력화시킬 때, 상대의 인격을 깡그리 무시하고 나오는 변론을 볼 때, 억지 자료로 사실을 왜곡시킬 때, 함량 미달임에도 전전긍긍 국민을 속이며 사건수임하는 것을 볼 때, 아직도 법관들을 통제하는 적폐 현상을 볼 때, 아직도 일부 사람들이 연줄이나 학연 등을 찾는 것을 볼 때,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권력의 눈치를 보는 행태를 볼 때, 그것에서 절망이 아니라 유의미한 것을 우리 변호사는 찾아야 할 것이다.

격동의 한해를 보내고, 부조리와 비정상을 없애자고 외친 시민혁명이 성공하였다. 이 같은 큰 변곡점은 시지프스처럼 묵묵히 돌을 산 정상에 끌어올린 무수한 시간들이 모여 이루어졌다. 우리 눈에는 무의미하게 보였을지도 모를 무수한 생각과 행동, 상상들이 모여 큰 폭발을 이루어낸 것이다.

이에 우리 변호사도 다시금 희망을 갖고 힘을 내보자. 더 이상 시지프스를 슬프게 하지 말자. 변호사들의 무수한 변론들이 모여 판례가 변경되고, 헌법과 법령들이 변경되어 왔다. 오늘의 수사결과나 판결이 비록 우리 변호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좌절하지 말자. 끊임없이 지켜보는 국민들이 있지 않은가. 부조리와 절망을 건전한 상식과 희망으로 바꾸는 국민들의 생각과 행동, 상상들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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