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있어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것은 없지만, 내 아들의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영화 어바웃타임(About Time)에서 신랑인 아들의 결혼식에 아버지가 들려주는 축사 일부이다. 평범한 말일 수 있지만, 막상 그 얘기를 듣는 아들의 감회는 어떠했을까? 영화를 잠시 앞으로 돌리면 결혼식 중 부자간의 몸짓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 또 하나 있다. 신부 입장 장면에서 다가오는 신부를 보고 신랑이 기뻐 좌우 스텝으로 살짝 추임새를 넣자 아버지도 이를 같이 따라 한다. 결혼식의 설렘이야 누구나 매한가지겠지만, 하객들 앞에서 신부에게 발현되는 자연스러운 몸동작은 어쩌면 그 아버지의 젊은 시절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내게도 부친과의 추억 중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다. 어린 시절 부친의 출근을 못 하게 막아서며 졸졸 쫓아다녀 아침마다 전쟁이었다고 한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날은 겨우 몰래 출근하셨는데, 얼마 후 “아빠”하고 회사 사무실 창문으로 머리를 빼꼼히 내밀더란다. 아마도 출근하는 부친을 보지 못한 탓에 어찌어찌 회사까지 따라나섰던 모양이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아버지와 떨어지지 않으려 용썼던 유년의 내 모습은 어쩌면 나의 조부도 부친을 통해 보셨던 모습이 아니었을까.

이제는 유년의 기억을 되짚어보는 나이가 되어 아이에게 어떤 아버지가 될지 자주 생각해 본다. 아이에게 뭔가를 가르치기 전에 아이가 부지불식간에 나로부터 배우는 게 더 많지 않을까.

어느 사진작가는 ‘부모란 아이와 한배를 탄 좋은 벗이 되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사이’라고 말했다. 나 역시 멀지 않아 아버지가 될 것이고, 감명 깊게 봤었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아이의 결혼식에서 그 어떤 몸짓을 서로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영화 속 결혼식의 축사는 아들의 감회이면서, 아버지에게는 자기 삶의 고백이었을 것 같다. 그 한 마디 말에 이르기까지 부모는 오랜 시간 아이를 믿고 기다리며 동행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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