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신탁법은 부동산법과 건설법의 가교이다. 신탁법을 모르면 부동산법을 안다고 할 수 없고, 부동산신탁법을 잘 알지 못하면 건설법을 제대로 다룰 수 없다.

그런데 부동산신탁법을 공부하기가 녹록지 않다. 우리나라의 부동산신탁법은 독일의 등기제도와 관념적 법이론 위에 영미의 실용적 트러스트 제도를 덧씌운 하이브리드 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혼혈적 성격은 실무에서 여러 난맥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선 일반인들은 부동산신탁을 명의신탁과 잘 구분하지 못해 피해를 보는 경우가 꽤 있다(수탁자가 개인이 아닌 신탁사라서 더 넘어가기 쉽다). “부동산의 신탁에 있어서 수탁자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면 대내외적으로 소유권이 수탁자에게 완전히 이전되고, 위탁자와의 내부관계에 있어서 소유권이 위탁자에게 유보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만 잘 알아도 부동산신탁법의 반을 아는 것이다.

소송실무에서도 사정은 그리 좋지 않다. 부동산신탁에 관한 판례법은 이제 겨우 모양을 잡아가는 단계이며, 그 완성도는 여타 부동산법에 비하여 현저히 떨어진다. 그만큼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받을 확률도 낮다. 또 무슨 이유에서인지 대법원 종합법률정보에 공개되지 않은 중요 판례가 적지 않다.

1심 법원의 부동산신탁법에 대한 이해도는 신뢰할 만하지 못하며, 그 폐해는 복잡한 쟁점들에 대해 제대로 판단도 받지 못한 채 권리행사가 좌절된다는 것이다. 법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분야에서는 변호사의 연구와 변론이 위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 수혜자는 대부분 신탁사이다.

이런 현실과 부동산신탁법의 어정쩡한 법리는 신탁사를 ‘슈퍼갑’으로 만들었고, 그 비용과 부담은 수익자의 몫인 신탁재산으로 고스란히 돌아간다.

신탁사의 갑질은 보통 ‘충실의무’(수익자의 이익을 위하여 신탁사무를 처리할 의무. 신탁법 제33조)의 이름으로 행하여지지만, 실제로는 충실의무와 선관의무(제32조)를 위반하여 신탁사의 이익을 꾀하는 갑질이 적지 않다.

부동산신탁은 건물신축·분양사업에서 대출금상환의 담보 목적으로 설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경우 신탁사는 시행사·시공사·대주단과 분양수입금 관리를 내용으로 하는 대리사무계약을 체결한다. 그래서 부동산신탁 관계를 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신탁계약과 대리사무계약을 유기적 일체로 보고 체계적 해석을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대리사무계약의 내용이 등기기록의 일부로 간주되는 신탁원부에 기재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인데, 그렇더라도 대리사무계약 중 거래상대방의 이익에 관계되는 내용은 제3자를 위한 계약으로 보아 적극적으로 그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 1심 법원의 잘못된 판결들은 대부분 이 점을 간과한 데서 나온다.

신탁사가 착한 갑질을 하는 경우도 있다. 대출금융기관(우선수익자)의 요구로 진행된 공매절차에서 수분양자 중 일부가 입찰해 낙찰을 받자 신탁사가 대출금융기관의 요구를 무시하고 낙찰자로부터 매각대금 중 시행사의 분양대금반환채무와 상계한 잔액만을 받고 낙찰자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해주고, 입찰에 참여하지 않은 나머지 수분양자에게 분양대금반환채무를 변제공탁한 후 그 나머지 금액(=매각대금-분양대금 상계액-분양대금 공탁액)만을 우선수익자에게 지급했다가 대주단으로부터 소송을 당해 최종적으로 승소한 사례이다(대법원 2008다19034 판결).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