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법체계는 최고 규범인 헌법과 그 헌법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법률, 그리고 그 법률의 시행을 위한 대통령령 등 하위 법령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사실은 대학교 1학년 공법입문 시간에 배운 이래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바뀐 사실이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법체계에 헌법은 아니지만 법률보다는 뭔가 상위(?)에 있는 것 같은 기본법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법률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독일의 경우는 헌법이 따로 없고 독일기본법이 1949년 당시 서독에 의해 제정되어 동독과 통일하기 전까지의 임시 헌법이라는 의미에서 ‘기본법(Grundgesetz)’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으나, 사실상 헌법의 기능을 하여 왔는데, 우리는 헌법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기본법이라는 추상적 규범이 법체계에 들어오는 것은 왠지 옥상옥(屋上屋)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헌법 개정이 너무 어렵게 되어 있어, 헌법에 들어갔으면 하는 추상적인 내용들이 기본법이라는 이름으로 법체계에 편입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기본법의 제정 추이를 살펴 보면 우리나라 최초로 기본법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중소기업기본법(1966년 1월 16일)이고, 그 이후로 국세기본법, 관광기본법 등이 제정되었으며, 2000년 이후 폭발적으로 기본법의 숫자는 늘어나서, 현행 법률 중 ‘기본법’이란 단어가 제명에 포함된 법률은 총 66개이다(하지만 지방자치법처럼 지방자치에 관한 기본적인 법률임에도 기본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몇몇 법률 제명을 살펴보면, 경찰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 기본법, 소방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 기본법, 국어기본법(국어가 법률로 기본을 정하여야 하는 분야인지…), 군인복지기본법,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등등 변호사로서, 입법부의 공무원으로서 부끄럽게도 ‘이런 법률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구나’ 라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면서, 한편 이렇게 존재감 없는 기본법이 과연 필요할까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급변하는 사회현실과 늘어나는 정책수요에 대응하여 새로운 사항들이 법에 규정될 필요가 있고, 규정되어야 하는 많은 사항들을 법률에 체계적으로 규정하기 위하여 법률의 종류를 좀 더 세분화하는 것이 법체계상 바람직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기본법이 필요한 분야에 대한 범위를 먼저 설정하고 그 다음에 그 분야에 대해 기본법에서 정할 사항과 개별법에서 정할 사항을 구분하여 기존 개별 법률에 대한 정비와 함께 기본법 제정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마침 지금 내 소관으로 교통기본법 제정법률안이 들어와 있어서 사실 나도 그렇게까지 검토할 시간과 여력이 모자란다는 점에 대해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기존에 사실상 기본법 역할을 하던 개별 법률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두고 새로이 ‘기본법’을 유사한 내용으로 제정하는 경우 또한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일은 발생하기 어렵겠지만 앞으로 만약 기본법과 일반 법률의 충돌이 발생한다면 이를 특별법 우선의 원칙, 신법 우선의 원칙이라는 법의 일반원칙에 따라 해결하여야 할 것인지, 아니면 기본법을 상위법으로 보아 기본법에 위배되는 일반 법률 조항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고 해야할 것인지…. 이러한 충돌에 대한 법원 또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언젠가는 내려지지 않을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며 다시 내가 검토하여야 하는 기본법 제정안의 조항들을 살펴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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