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6호기 원전건설이 일시 중단되고 공론화 과정까지 거치며 탈원전이 우리 사회의 핫이슈가 되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의 조급성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들도 “빨리 빨리”라는 말을 제일 먼저 배운다는 우스개가 있다. 우리는 무엇이든 바꾸는데 있어서의 신속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한 성정이 경제성장, 민주화, IT산업 등 사회와 산업발전을 앞당긴 측면도 있다고 하겠지만, 그것은 온 국민의 희생과 노력의 산물일 뿐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매우 대조적이다. 과문한지 모르겠지만 무엇이든 바꾸는데 있어서 우리보다 훨씬 신중하다. 신중하다 못해 답답할 정도이다. 후쿠시마원전사고 당시 피해주민들에게 보급품이 도착하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렸음에도 불평 하나 않는 일본 사람들을 보며 의아해했다. 지진, 태풍 등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여서 그 대처에는 한계가 있다는 오랜 경험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면 거친 항의, 관련 공무원의 문책 등으로 시끄러웠을 것이다.

일본이 후쿠시마원전사고를 겪고도 탈원전으로 에너지정책을 전환하지 않고 있는 것은 원전 자체의 본질적·내재적 문제라기보다 자연재해로 인한 사고라고 보는 논리가 그 근저에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례를 더 들어보자. 우리는 미국식 로스쿨제도를 도입하면서 로스쿨 인가대학의 법학부를 폐지하였고, 5년 먼저 같은 제도를 도입한 일본은 법학부를 둔 채 그 위에 로스쿨을 설치하였다. 2007년 로스쿨 준비 당시 세미나에서 만난 일본 법학자들은 법학부를 폐지하는 우리의 획기적(?) 조치를 더 나은 것으로 평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법학부를 폐지하니 이론교육의 부실과 학문후속세대의 단절이라는 문제가 발생했다. 일본의 경우 70여개 로스쿨 중 30여개가 입학생 감소로 폐교수순을 밟고 있지만 법학부만의 존치가 가능하게 된 것이 그 이유이다.

2015년 주거권을 명문화한 주거기본법 제정을 계기로 논문을 작성하면서, 관련 일본문헌에서 주거권을 법제화하지 않은 이유로 사회적 컨센서스 부재를 든 것을 읽고 그들의 신중함을 엿볼 수 있었다.

최저임금인상과 비정규직문제도 시행령에서 인상률, 적용사업장의 한시적·점진적 확대를 꾀했더라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향후 논의될 검경수사권조정문제도 제로섬 아닌 순차적 이양이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예컨대 교통사고사건, 폭력·강절도·사기 등 전형범죄나 법정형이 경한 사건부터 점진적으로 이양하는 것이다. 일시에 수사권을 전부 넘기고 공소권만 가진다면 그 많은 검찰인력은 어찌할 것인가?

국회선진화법, 대학입시·교육정책, 에너지·부동산 정책 등 입법·행정 선례에서 보듯이 ‘최선의 방책’으로 채택된 제도가 낳는 예상치 못한 역효과, 역기능은 정책실패의 시행착오 경험에서 얻는 값비싼 학습효과이다. 세상 모든 일에서 템포조절도 중요하다. 헤겔의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요,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는 명제는 이상주의자, 현실주의자 모두에게 주는 불변의 가르침이자 진리가 아닐까?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