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인권은 상호대립적이다. 여러 개인들이 같이 질서를 만들어가는 민주주의는 개개인의 특성을 무시하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균형을 찾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민주주의를 누리며 인권이 보호되는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제네바에서는 세계적으로 이 갈등관계를 논의하며 해결하기 위한 인권이사회가 있다. 각국의 외교관들이 제일 살기 좋아보이는 도시에서 말잔치하기 위해 제네바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이 곳은 200여년 전 루소와 볼테르가 논쟁을 펼치던 곳이다.

민주주의는 토론으로 시작하는 만큼 표현의 자유 보호는 필수적 요소이다. 그러나 무제한의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 올바른지는 다른 문제이다. 표현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고 가급적 최대한 보장하는 입장이 있을 수 있지만, 공공질서 유지를 위해서 제한할 수 있다. 인권이사회에서 미국을 제외한 서방 국가들은 외국인 차별·혐오 발언 등을 제한하는 입장을 취한다. 다른 국가들은 공공질서를 위해 더욱 조건부적 제약을 가해야한다고도 한다.

‘제네바의 시민’ 루소가 환영하는 방향의 논의인 것이다. 루소는 공공질서를 부정하는 사상 및 표현이나 상대의 존재를 부정하는 표현은 제한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반해, 프랑수아-마리 다루에, 즉 볼테르(Francois-Marie d’Arouet, 필명 Voltaire)는 제네바에서 불과 5km 밖 페르네에서 공공이 상당히 자의적인 개념인 만큼, 표현의 자유는 무조건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한편, 가족의 역할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일까? 인권이사회에서는 사회에서의 가족의 역할에 대한 결의안이 지속 상정되고 있다. 가족 속에서 삶이 시작하는 만큼 교육에 있어서 체벌, 성교육, 사회적 약자의 보호 등에 있어 가족의 역할이 크다고 보는 것이 감정적으로는 당연시된다. 그러나 정책적으로 가족의 역할을 강조할 수는 없다. 개인이 가족이라는 제도를 활용할지에 대한 선택권을 주어야할 뿐만 아니라, 가족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릴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에서 삶이 시작하기에 재생산 권리를 가족의 문제로 바라볼 경우에는 성교육을 비롯한 개인 신체의 자유까지 침범한다. 따라서 가족을 중요시하는 결의안은 우리나라 등 서방의 지지를 쉽게 얻지 못한다.

동성간 결혼 및 입양, 청소년의 재생산 권리 등은 현대의 문제지만, 문제 자체는 1700년대에도 있었다. 볼테르는 기존 제도에 의구심을 품으면서 개인의 자유에 최대 중점을 두었다. 개인은 자기 신체를 자유롭게 활용할 권리, 자유롭게 행동할 권리가 있으며 이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와 반대로 루소는 이런 자유에 의구심을 품었다. 이러한 자유는 노동 및 부의 축적의 자유까지 포함한 만큼, 불평등과 구속의 출발점으로 본 것이다. 사회적 가치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교육이나 주권체가 만드는 것으로 보았다.

딱딱한 법의 언어로 봤을 때, 인권이사회에서의 논의는 말잔치에 불과한,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주요 기구로 보기 쉽다. 볼테르와 루소도 불필요한 논쟁을 야기하여 당대에 고향으로부터 버림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간 교류 및 기술 발전으로 사회가 급변하는 현대에 와서 두 사람의 사고 방법은 살아있다. 그리고 세계 각 문화와 민족들이, 국가들이 개성을 유지하며 공존하는 방안을 찾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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