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했던 2017년을 정리하고, 삶의 우선순위를 정립하며, 새로운 다짐을 하기 위해 떠난 삿포로에서, 저녁이 있는 삶을 만났다.

그곳이 유난히 해가 빨리 지는 곳이기 때문이었을까. 이번 여행기간 중 상당 기간 동안 체류하였던 하코다테에서는 오후 6시가 되면 대부분의 상점들이 폐점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주요 관광지에 위치한 상점들도 7시 즈음이면 문을 닫아 보고 싶었던 곳을 방문하지 못하고 지나쳐오는 일들도 있었다. 또 다른 체류지였던 오타루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이러한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마음 한켠에서는 문득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두곳 모두 야경이 유명한 관광지들이 다수 있어서 ‘조금 더 늦은 시간까지 상점을 열어두면 지역이 더 활성화되고 여러모로 좋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우리나라 못지않게 과로사 문제가 심각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과로사를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회적 병폐로 선언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담은 ‘과로사 등 방지대책추진법’을 제정하여 시행 중인 일본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한 것 같아 새로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처럼 상점들이 일제히 문을 닫아 고요해진 거리를 지나가면서 ‘다 같이 저녁이 있는 삶을 살다니 부럽다’는 생각이 들 무렵 도착한 숙소에서, 청년들이 우리나라의 근로환경을 견디지 못하여 해외로 취업한 사례들이 있다는 기사를 접하고 다시 한번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장시간 근로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은 여러 연구와 현상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과로로 인해 개인의 건강에 지대한 악영향을 미침은 물론이고, 종국에는 과로사에 이르거나 스스로 삶을 포기하게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사례들이 수차례 보고되었다.

또한 청년들은 출근시간은 명확히 정해져있지만 퇴근시간은 도무지 알 수 없는 고단한 삶에 지쳐 삶의 다음단계를 준비하는 것에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처럼 장시간 근로에 따른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이를 방지하고자 하는 여러 논의들이 제기되어 왔지만, 2018년 현재에도 장시간 근로의 관행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실현하고 저출산으로 인한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장시간 근로 관행의 개선은 반드시 필요하다. 장시간 근로로 인하여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현저히 부족해짐에 따라 육아와 가정생활에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러한 일들을 목도하거나 직장에서 스스로 겪게 되면서 출산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어려움을 갖게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을 언제까지 ‘개인의 선택’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는 나 역시 여전히 밤낮없이 일에 매진하고 있고, 그런 삶을 살지 않는 것은 불성실한 삶의 표상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삶이 과연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야근이 성실함의 주요한 표상이 되는 사회적 인식은 또 어떠한가. 단기적인 성과를 위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포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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