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사회변화 탓인지 한해가 언제 저문지 모르게 또 연말연시가 다가왔다. 필자가 사무실 창문 밖으로 무등산(無等山)을 바라보며 2017년을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에 던져진 가장 큰 화두는 ‘인공지능’과 ‘촛불집회’라고 하겠다.

인공지능의 실용화는 필연적으로 사회변화와 관련 직업의 성쇠를 가져온다. 필자의 사무실이 있는 빛고을 광주 지역의 대학병원들도 인공지능 의료시스템을 도입하여 상담·진료에서 치료·수술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과 의사의 협업이 현실화 되었다. 인공지능 재판장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 아직 논란이 있지만 그 논란의 부정론자들이 설 자리는 날로 축소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까? 사라져가는 직업목록에 의사나 판사, 변호사 등이 추가되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피할 수 없어 추가된다면 언제일까? 최선의 노력의 결과는 그 시기를 최대한 연장하는 것에 불과한 것일까? 시간은 모든 면에 있어서 인공지능 편으로 보인다.

또한, 2016년 말쯤과 2017년 초에는 주말마다 서울의 명동과 종로에 해당하는 빛고을 광주의 충장로와 금남로에서도 남녀노소 모두가 작은 촛불을 들어 역사의 커다란 물줄기를 바꾸어냈다. 그 촛불집회는 집회·시위가 정보혁명 시대에는 어떻게 될까란 질문에 대해 성공적인 적응의 일례를 보여 준 것이고, 고양된 시민의식의 일면을 보여 준 것이다. 요즈음 필자가 의뢰인과 상담해보면 의뢰인의 권리나 공익에 대한 의식이 변화한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의뢰인은 자신의 권리구제도 문제 삼지만 과거와 달리 유사한 사례에 대해 재발을 방지할 수는 없는지도 문제 제기하고 고민한다.

인공지능과 촛불집회는 우리 사회에, 특히 변호사 직역과 관련하여 우리 지방회와 소속 변호사에게도, 이미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고 앞으로 더욱 깊은 영향을 끼칠 것은 명약관화한데, 그 영향이 언제 어디까지 이를 것인지를 알 수 없으니 필자는 자신의 심사조차 갈피를 잡기 어렵다.

필자는 머리가 복잡하면 평일에도 잠시 시간을 내서 무등산에 올라 머리를 식히곤 한다. 무등산은 웅장하고 빼어난 풍광을 품고 있으면서도 완만한 능선이 이어진 토산 형상이라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산에 올라 경관을 즐길 수 있다.

다른 지역에서 광주에 재판이 있어 직접 오게 된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 거리 10미터 이내에서 인구 100만명 이상의 도시를 품고 있는 높이 1000미터 이상인 산으로는 세계에서 유일한 산, 무등산을 경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무등산에서 해맞이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무등산 산행코스가 만나는 중머리재에서 모여 앉아 새해의 첫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린다. 딱히 진행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소를 하다가 누가 부르기 시작했는지 모르는 노래를 따라 부른다. 때로는 옆 그룹에서 시작한 어깨동무에 참여하여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희망찬 새해를 기대한다.

새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 물론 기쁘고, 구름이 걷히지 않아 새 해가 떠오르는 것을 못 보더라도 내년을 기약하며 아쉬운 마음을 갈무리하고 하산을 한다.

무등산의 무등은 평등을 초월하여 비교불가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작금의 사회변혁을 상징하는 ‘인공지능’과 ‘촛불집회’는 그 순기능과 역기능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는 ‘무등(無等)’에 더 다가가기 위한 것일까? 당장 무등산이 당면문제에 답을 주지 않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필자도 조만간 무등산에 올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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