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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러빙 빈센트, 그리고
최용성 변호사  |  choi@seoulba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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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8호] 승인 2017.12.18  09:4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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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념에 속박당하지 않는 정신을 지닌 사람들, 특히 창의적인 예술가는 시대와 불화하기 쉽다. 그래서 종종 위대한 예술가는 동시대로부터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비극적인 삶을 살아간 순교자로 묘사되고는 한다. 그러나 이것은 낭만주의 예술가 상이 만든 편견이다. 시대를 앞서는 작품으로 당대와 화해하지 못하는 장면은 흔히 찾을 수 있지만, 동시대에 철저히 외면당할 정도로 무시당한 위대한 예술가는 실은 거의 찾기 어렵다(물론 ‘위대함’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쓰냐에 따라 이 말도 잘못된 언명일 수는 있기는 하다). 왜냐하면 예술가가 살면서 소통한 동시대 사람들의 집단 기억이 존재하여야 이것이 후대에 전해지면서 시대를 뛰어넘는 위대한 예술가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빈센트 반 고흐는 정말로 특이한 존재이다. 당대에 철저히 외면당하고 수많은 그림 중 고작 1점만 판 화가가 지금은 현대미술을 연 개척자로 평가받을 뿐만 아니라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 하나가 되어 있으니까. 이런 예술가를 영화 매체가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일터. 우선 빈센트 미넬리 감독의 ‘불꽃의 사람 고흐(Lust for Life. 1956)’가 있다. 마치 고흐의 화폭을 옮겨놓은 것처럼 감각적이고 고급스러운 화면, 그것을 뒷받침하는 미술 및 세트 디자인과 로케이션, 무엇보다 고흐 자신이 환생한 듯한 커크 더글러스의 열연, 미클로시 로자의 고품위한 음악이 어우러진 명작이었다. 고흐가 선교사를 그만 두고 화가로 출발하여 삶을 마무리하기까지 인생 여정을 잘 그려냈다.

고흐의 그림을 유화로 재현하여 만든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도로타 코비엘라와 휴 웰치맨 감독)’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고흐가 자살했다는 세간의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영화는 시작한다. 실제 고흐가 자살을 하였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밝혀진 바 없다고 하는데(박찬운, ‘빈센트 반 고흐, 새벽을 깨우다’ 416쪽 이하), 그러다보니 영화는 고흐의 삶과 작품을 따라가지 않고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추리물 형식을 취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고흐 자신은 다른 사람들이 진술하는 기억 속에서만 단편적으로 모습을 보인다.

회상 장면은, 고흐 사후 사람들이 살아가는 황홀한 색채의 세계와 대비되어, 필름 느와르처럼 암울한 흑백의 세계로 그려졌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배우들이 실사(實寫) 화면에 가깝게 보인다. 이러한 화면 대비를 통하여 감독들은, 고흐의 힘든 삶, 거기 더하여 결국 사람들 기억에 남은 장면이 역사적 사실을 구성하는 것임을 함의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영화가 선택한 비밀의 답은, 신기하게도, 박찬운 교수가 고흐의 자살 동기로 생각한 내용(위의 책 417쪽)과 맞아 떨어진다. 그러나 영화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의혹의 진상이 아니라, 위대한 고흐의 예술혼이다. 영화의 표면적 이야기 구조만 보고, 영화의 내러티브가 빈약하다거나 고흐의 삶과 작품에 대하여 별로 알려주는 것이 없다는 비판에, 일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공감할 수 없는 이유이다.

빈센트는 1882년 7월 21일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한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칠까. 보잘 것 없는 사람, 괴벽스러운 사람, 비위에 맞지 않는 사람, 사회적 지위도 없고 앞으로도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갖지도 못할, 한마디로 최하 중의 최하급 사람…. 언젠가는 내 작품을 통해 그런 기이한 사람, 그런 보잘것없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여주겠어(위의 책, 343쪽에서 재인용).” 그리고 그의 소박한 희망. “나는 내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기를 바란다. 마음이 깊은 사람이구나,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너의 사랑하는 빈센트.” 순간 내 정신은 위대한 빈센트의 예술혼과 바로 소통하는 드문 경험을 한다. 빛깔을 이루는 점, 입자들이 소용돌이치고, 공간에 흐르며 별빛처럼 흩뿌려지는 고흐의 그림들이 움직이며 우리가 창의적인 예술가에게 얼마나 빚지고 사는가를 느끼게 하는 영화의 힘. 그리고 우리 곁에 있는 또 다른 빈센트를 몰라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성찰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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