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정신’의 저자 몽테스키외(Montes quieu)는 영국의 사법제도를 둘러보고 와서 영국의 사법제도는 사람을 살리는 기능을 하고 있고 프랑스의 사법제도는 사람을 죽이는 기능을 하고 있다면서 당시 프랑스 형사사법의 현실을 개탄한 바 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언이 우리의 형사소송법을 지배하는 법리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형사사법의 실제에서는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모든 문제의 근원이 있다고 필자는 믿고 있다.

필자가 국회에 몸담고 있던 2002년경의 일이다. 당시 1000여억원에 가까운 국가안전기획부의 예산이 YS대통령 당시인 15대 총선 때 여당의 선거자금으로 빠져나가 집행되었고 그 중심에 당시 여당의 사무총장이었던 강삼재씨와 안기부의 김기섭 전 운영차장이 있다고 보았다. 검찰은 그 두 사람을 관련법 위반혐의로 기소했고 1심에서는 두 사람에게 중형이 선고되었으나 2심에 가서 강 의원이 YS로부터 대선자금의 남은 부분을 받아 집행한 것이라는 실상을 밝힘에 따라 사실상 무죄로 끝나고 말았다(강삼재 전 의원의 경우엔 자금세탁 부분만 유죄가 인정돼 벌금 1000만원에 처해지는 것으로 결론이 났음). 아무리 특수활동비를 넉넉하게 쓰는 안기부라지만 1000억원이 넘는 돈이 고유의 용도에 쓰이지 않고 밖으로 빼돌려졌다면 그 조직이 제대로 굴러갔겠는가 하는 의문이 당연히 드는 사건이었다. 결국 그 사건은 검찰도 법원도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모른 채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가 아니라 피고인의 불이익으로 판단하면서 사건의 처리에 임했음을 잘 나타내 준 사건이 되었다.

1997년 IMF 사태가 터지자 검찰은 감사원의 수사의뢰를 받아들여 IMF 사태 당시의 경제부총리였던 강경식씨와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던 김인호씨가 이 사태의 주범이라며 이 두 사람을 직무유기죄로 구속기소했으나 결국 법원에 가서 이 두 사람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명예를 먹고 사는 현직 장관이나 고위 관료가 뇌물 등에 연루돼 직무의 공정성을 기대할 수 없는 사정이 있지 않다면 고의가 요구되는 직무유기나 업무상배임 등의 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그러나 검찰은 크게 보아 과실범으로밖에 볼 수 없을 정책판단의 문제에 대해서도 무슨 큰 사건이 터지면 일단 주무자를 직무유기나 업무상배임으로 처벌하려 한다. 법원도 많은 경우 각종 영장 발부엔 협조를 해주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일전에 있었던 변창훈 전 검사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변 검사가 죽기 며칠 전 그의 집에 아침 7시경에 압수수색 영장 집행관이 들이닥쳤다고 한다. 자녀들이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 온 가족이 하루를 시작하면서 얼굴을 맞대는 평온한 시간이다. 그 사건과 관련된 자료가 별로 있을 것 같지 않은 자택에 하필 그 시간에 압수수색을 하였어야 했는가.

전 정부 당시 있었던 정책적 판단의 문제 등에 가볍게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어 정책적 판단상의 문제를 고의범으로 몰아가거나 수사상 강제처분을 함에 있어서 피의자의 삶이나 인격을 도외시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거의 변함이 없다. 많은 피의자들로 하여금 수사과정에서의 억울함과 인격 모독을 못 견디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하는 불행한 일이 수시로 발생하는 우리의 형사사법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의 형사사법이 사람을 살리는 기능을 하고 있는지 죽이는 기능을 하고 있는지 새삼 되돌아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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