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스위스에서 휴가를 보낸 적이 있다. 처음 가보는 유럽, 더욱이 눈 덮인 알프스와 모네가 그린 하늘빛이라고 아내가 감탄하던 구름 머금은 하늘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숙소에서 독일 하노버에서 온 마이클 부부와 친해졌다. 그들이 빌려준 지도로 여행에 많은 도움을 받았으나 시간이 엇갈려 되돌려주지 못하고 헤어졌다. 매년 스위스를 방문하는 그들 여행의 흔적이 담긴 지도였다.

다행히 연락이 닿아 이후 유럽을 가는 편에 돌려줄 기회가 생겼다. 일정을 마치고 렌터카를 달려 그들이 휴가차 있는 스위스 동부 스쿠올(Scuol)로 향했다.

그러나 가는 도중 난관에 부딪혔다. 기차에 차를 싣고 산을 통과해야 하는데 도착해보니 열차의 운행이 끝난 후였다. 주위는 어두운데 이제는 차로 산을 넘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내비게이션이 경로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도를 전해주러 가다가 정작 내가 길을 잃은 것이다.

다행히 현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나, 공사로 통제된 도로가 많다고 우려를 표했다. 내비게이션이 경로를 놓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결정해야 했다. 현지인이 알려준 이정표에 의지해 어둠을 달려 알프스를 넘을 것인지 아니면 멈출 것인지.

다시 출발했다. 지도를 돌려주어야 하니까. 높고 깊은 알프스를 전조등 빛을 따라 살얼음처럼 나아갔다. 위험한 산악 초행길의 불안감도 컸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예기치 못한 상황의 고립이었다. 주위는 아무도 없고, 연락할 곳도 없는데 난 여기가 어딘지도 모른다. 고립의 두려움은 되돌아가는 길이 멀어질수록 점점 커졌다. 이 어둠을 벗어날 수 있을까? 우주의 칠흑을 3시간여 달리니 마침내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지도는 제 주인을 찾았고 우리는 재회의 시간을 가졌다.

난 아직도 그 산의 모습을 모른다. 그러나 어둠의 공포에서 나를 이끈 것이 무엇인지는 안다. 여행지의 조우가 지도를 통해 그다음으로 이어져 독일인 부부와 이제 두번 만났다. 우리는 이미 친구가 되었지만, 대륙 너머에 있을 성숙한 모습의 세 번째 만남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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