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에서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벌이다보면 법률에 들어간 단어 하나의 해석을 두고 다툼을 벌이거나 판례의 태도를 두고 그 여백의 의미를 파악하려 애쓰는 일이 잦다. 그럴 때면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을 너무 깊게 들여다보는 오류를 범하여 쟁점 외의 주장에 지나치게 몰입하기도 하고, 완벽한 모자이크 조각이 오히려 전체 그림의 판단을 뒤흔드는 경우도 생긴다.

소송대리인으로서 숲을 보지 못하는 곤궁에 처했을 때 가장 도움이 된 것은 비법률가인 일반인의 의견이었다. 오히려 법과 판례의 태도를 미리 인지해서 생기는 선입견이 없기 때문일까, 그들은 대개 상식에 부합하는 판단을 하고는 한다. 이렇듯 일반인의 건전한 상식은 판결 속 모호한 상황의 해석 기준이 되기도 하고 과실 등 중요 요건 사실의 판단 기준이 되기도 한다.

다소 감정적이라고 생각했던 의뢰인의 말 속에 의외의 해답이 있기도 했고, 일상 속 보편적 상황에 현 사실관계를 비유에 설명하는 당사자의 이야기 속에서 그토록 보려했던 숲이 열리기도 했다. 법률이 이러하고 판례가 이러하니 승소는 어려울 것 같다고 예상한 나의 판단은 어려운 길은 가지 않으려는 심적 두려움과 게으름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음을 반성한다. 세상은 우리가 경험했던 어느 시기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고, 현실과 비교하여 늘 과거의 것일 수밖에 없는 법과 판례가 미처 아우르지 못하는 변화의 결과물은 계속 등장할 것이다.

언제까지가 청년변호사로 호명될 수 있는 시기일까. 모호하지만 일반인의 상식상 아직은 청년변호사인 것 같다. 그러니 변화의 주역이 될 청년변호사로서 다짐하는 것 하나는 법률가라는 이유로 오만하지 말자는 것. 삶의 어느 곳에나 스승은 있다. 소명의식과 선민의식은 구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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