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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눈높이로 소통하는 법제처의 수장김외숙 법제처 처장
인터뷰어 Ι 박상흠 변호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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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호] 승인 2017.12.04  09:4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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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법조인으로서의 꿈을 갖게 되었으며, 노동자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제가 포항에 살던 어린 시절 포스코 협력업체 직원이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노동자의 삶과 어려움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후일 법조인이 되어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목표를 갖게 됐습니다. 이후 법대에 진학했는데 사법시험 준비에 열중하여 학생운동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부담을 늘 가졌습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입소 후 이 같은 부채의식 때문에 노동법학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노동자 인권을 대변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변호사가 된 후 노동 관련 업무를 주로 한 문재인 변호사가 몸담고 있는 법무법인 부산에서 소송 업무를 수행하면서 여러 가지 노동 사건들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법제처장 임기 중 어떤 법제처를 만들고 싶으신가요.

국민의 입장에서 법령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한편 낡고 불합리한 법령을 개선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법제처 2018년 사업계획 가운데 법령을 한글화하고 어려운 한자를 쉬운 용어로 바꾸는 사업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국어전문가, 관계부처 공무원, 관련 전문가 협의 체제를 구축할 뿐만 아니라 아이디어 공모제를 통해 국민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또한 법제처의 입법 전문성을 바탕으로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법제도를 신속히 정립해 국민이 실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갈등, 도농 문제, 중앙 지방 간 문제 등 사회적 차별을 시정하고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위해 지방자치제도에 저해되는 법령에 대한 정비작업에도 나설 것입니다.

어린이 법제관, 청소년 법제관, 진로체험학교를 진행해 법의 중요성을 어린 시절부터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기능도 제공하고 싶습니다.

이같은 노력을 통해 국민과 소통하는 법제처를 만들고 싶습니다.

대한변협신문 필진으로도 활동하셨던 것으로 압니다.

필진으로 활동할 때 원고 마감일이 가까워질수록 글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마음에 긴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대한변협신문을 받고 있는데 너무 바빠서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꺼번에 몰아서 보려고 합니다.

대한변협신문의 내용은 변호사로서 알아야 할 정보들에 대해 많이 담아내는 보물창고와 같습니다.

동아대 로스쿨 겸임교수를 하시고 로스쿨생들과 함께 공익소송을 진행하신 것으로 압니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제가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로스쿨은 법률전공자뿐만 아니라 비법률전공자도 있어서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법학을 접근할 수 있는 학문의 장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일반 국민의 시각에서 법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법률가들은 어떤 방법으로 법을 적용해야 할지 고민하게 한 시간이었습니다.

리걸클리닉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협력하여 소송을 수행한 경험도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소송 당시 교도소 등 수용시설의 과밀수용으로 1인당 사용 면적이 기준치보다 좁아 수용자에게 최소한의 공간도 공급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했는데 1심에서 패소했습니다.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외국의 사례를 찾아 국제적으로 수용자에게 보장하는 최소 면적을 조사했고, 다른 그룹은 준비서면을 작성하는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제가 두 자료를 종합하여 법원에 제출하고 법정에서 변론을 했습니다. 이 같은 노력으로 2심에서는 승소했습니다.

소송 준비과정에서 로스쿨생들은 대단히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며 원문번역이 쉽지 않은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가장 존경하는 법조인을 뽑는다면 누구인가요.

단연코 문재인 대통령입니다. 법률가로서 문재인 변호사는 변호사로서의 역할에 일관된 모습을 유지해오신 분입니다. 제가 1992년 변호사로 첫발을 내딛을 때부터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곁에서 지켜보니 바깥 소문과 동일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변호사법 제1조가 규정하고 있는 변호사의 사명인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하는데 일관된 모습을 취한 분이었습니다.

또한 각 사건을 대할 때마다 치열하고 끈질긴 모습을 견지했습니다. 단 하나의 쟁점도 대충보고 지나가거나 포기하는 법이 없고 끝까지 파고드는 치열함, 치밀함, 끈질김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집념이 재판에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낸 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또 의뢰인들을 대할 때에도 변함없이 경청을 하는 변호사였습니다. 변호사 입장에서는 의뢰인들의 무리한 요구와 반복되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시간낭비라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끊어버리기 일쑤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 변호사께서는 끝까지 의뢰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십니다. 왜 이 의뢰인이 이 이야기를 반복해서 말할까, 이 사람은 지금 어떤 환경에 처해있을까, 이 사람이 정말 간절히 원하는 바는 무엇일까를 생각하시면서 들어주셨던 것 같습니다. 문 변호사께서 의뢰인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시면 의뢰인 스스로 해결책을 찾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의뢰인과 변호사 간의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의뢰인이 변호사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단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문 변호사님의 경우, 설령 의뢰인이 재판과정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신뢰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본인이 답을 얻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찾아가게 됩니다. 제가 지금 공무원으로서 업무를 수행할 때도 이 같은 모습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인물의 뒤에는 꼭 어머님이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처장님의 어머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어머니는 제가 바깥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가장 큰 비밀과 같은 존재입니다. 집안일을 도맡아 하시고 모든 집안의 문제를 책임지십니다. 기독교인으로서 늘 새벽을 깨우며 기도하는 분이신데 제가 외부에서 일할 때마다 정신적인 버팀목이 됩니다. 우리 가족 모두의 가장이십니다.

어머니는 말로써 어떻게 행동하라고 하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가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배우도록 하시는 분입니다. 어머니의 희생이 우리 가정의 큰 기둥이 되었기 때문에 오늘까지 제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일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주요 약력
사법시험 31회, 사법연수원 21기
전,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
전, 부산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전, 부산고등법원 조정위원
전, 경상북도 행정심판위원회 위원
전, 부산광역시 행정심판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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