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한 고위 법관이 친구에게 딸의 혼처를 부탁했다. 친구가 어떤 직업이면 좋겠는지 물었더니 사람만 성실하면 된다고 답했다. 그리고 잠시 후 덧붙이기를 “사업하는 사람만 아니면 돼.”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온 나라가 부산을 떨고 있지만 경제를 살리는 원동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공통된 인식이 없어 보인다. 경제는 사람이 움직인다. 돈 ‘버는’ 일에 사람이 몰리면 경제는 산다. 인재들이 몰려오면 더 좋다.

한국이 단기간에 조선, 화학, 반도체, 자동차 등에서 약진하는 것을 보고 엔지니어링 강국 독일에서 한국의 성공 원인을 탐구했다고 한다. 전통적인 산업기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초과학이 제대로 되어 있지도 않은 한국이 6·25 전쟁 후 30여년 만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는 것이 신기하게 보인 것이다. 여러해 조사했지만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결국 인재들이 공과대학에 몰렸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냈다고 한다.

맞다. 한 때 화공과가 수재들의 꿈인 시절이 있었고 전자공학과가 그랬다. 한양공대나 인하공대처럼 공대 하나로 종합대학과 맞먹던 시절이 있었다. 그 인재들이 지금 년간 5000억 달러 수출의 기반을 닦은 것이다.

미국이 무서운 것은 땅 크기 때문이 아니고 전 세계의 인재들이 어메리칸 드림이라는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돈이 되는 곳에 몰리기 때문이다. 중국이 무서운 것은 전 세계에서 중국어를 쓰는 사람이 제일 많아서가 아니고 제일 공부 잘 하는 청년들이 창업에 몰입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청년들은 시험에 매진하고 있다. 이른바 공시생이 26만명, 삼성그룹 직무적성시험 응시자가 3만명이 넘는다. 재작년에는 10년 전에 폐지를 예고한 사법시험을 다시 보게 하자고 난리법석을 피웠다. 사회가 시험을 통해 성공해 보라고 권하고 있다. 투자자 짐 로저스 회장이 노량진 학원가를 둘러보고 “10대의 꿈이 공무원인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며 다른 나라와 어떻게 경쟁을 하고 나라의 빚을 갚을 수 있겠는가 걱정을 했다.

20년 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한국은 처음으로 망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국가 단위에서 체험했다. 자식들은 하던 공부를 접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가고, 부부는 이혼을 하고, 가정이 해체되는 것을 보았다. 인재들이 위험이 적은 쪽으로 몰렸다. 대학 도서관 열람실이 법전과 수험서로 덮였다. 세금 쓰는 쪽으로 인재가 쏠리면 누가 세금을 내는 일을 하나?

실패해도 몇번이고 다시 시작해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인재들이 사업을 하려고 한다. 시험이 아닌 사업에 인생을 거는 청년이 있어야 경제가 산다. 인재들이 사업에 몰릴 수 있게 하는 정책 이상의 경제정책은 없다.

미군 항공의무후송팀의 이름이 DUSTOFF이다. 부상병 후송을 위해 야전에서 헬기가 띄고 내릴 때마다 먼지가 이는 것에서 유래했는데 그 해석이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의 전사를 위한 주저함 없는 헌신적 봉사.”

도산 신청은 경제의 전장에서 크게 다친 이가 보내는 응급구조신호이다. 그가 구조되어 사는 것을 보면서 경제의 전사들은 거친 싸움터에 나아가 일할 용기를 얻는다. 도산신청자 한명을 살리는 것이 우리 경제를 살리는 것이다. 우리 법원이 밤낮으로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세계 최고의 중증경제외상치료센터가 되어 한국 경제를 살리게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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