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변호사의 세무사 자격 자동 취득 불허 법안 직권상정 저지 위한 강력 투쟁
1인 릴레이 시위부터 궐기대회까지, “세무사법 직권상정 국민에겐 권리박탈” 외쳐

변호사계가 세무사계와의 직역을 둘러싼 격돌에서 승리했다.

변호사에 대한 세무사 자격 당연 인정 규정 삭제를 막기 위해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김현)가 펼친 총력전에 힘입어 해당 내용을 담은 세무사법 개정안(이하 ‘개정안’) 직권상정이 무산됐다. 당초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단은 개정안 직권상정에 합의했으나 자유한국당이 합의를 유보했다.

갈등을 야기한 개정안은 이상민 국회의원이 지난해 10월 발의했으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같은해 11월 이를 수정해 기재위 대안으로 통과시켰다. 이후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됐으나 법안심사제2소위원회에서 1년 가량 계류되다가 정세균 의장이 지연법안을 본회의에 부의하겠다고 밝히며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됐다.

여야 원내대표단 합의가 유보됨에 따라, 기획재정위원회가 부의 요구를 한 17일부터 30일이 지나는 시점인 내달 16일 본회의 부의 여부를 두고 투표할 수 있게 된다.

개정안 직권상정 유보라는 성과를 거둘 수 있던 것은 변협의 발빠른 대처때문이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A 변호사는 “김현 협회장이 결단력 있게 즉각적으로 대비를 해 문제가 크게 불거지지 않았던 것”이라면서 “제49대 집행부뿐만 아니라 전국의 변호사가 짧은 순간에 힘을 합쳐 이런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변협은 지난 20일 개정안 직권상정 소식에 즉각 성명을 내고 “국민의 선택권, 재산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법률전문가인 변호사에게 세무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장려해야 할 정책적 필요성이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법률서비스의 국제 경쟁력을 저하시키게 된다”면서 “개정안은 변호사 제도를 형해화시키고, 세무·특허, 의료 등 직역별 전문 변호사를 배출해 대국민 법률서비스 역량 강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법전원 도입 취지에 명백히 반한다”고 비판을 쏟아냈다.

또 변협은 세무사법 개정 저지를 위한 시위를 준비하고 즉시 실행에 옮겼다. 당초 다음날인 21일부터 대규모 궐기대회를 열고자 했으나 48시간 전에 집회신고를 해야 하는 시간적 제한 때문에 1인 릴레이 시위를 우선 시작했다. 변협 제49대 집행부는 김현 협회장을 필두로 국회와 3당 당사 앞에서 1인 릴레이 시위(3면 사진)를 벌였다. 시위는 1시간 간격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됐다.

23일에는 대규모 궐기대회(사진)도 개최했다. 추운 날씨에도 전국 각지에서 모인 변호사 300여명이 같은 목소리를 냈다. 당초 24일에도 궐기대회가 예정돼 있었으나 각 당 대표, 법사위원장, 기재위 위원장을 비롯한 국회의원과 접촉해 개정안을 저지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고 판단하고 이를 취소했다.

23일 궐기대회에 참석한 변호사들은 김현 협회장의 선창을 시작으로 “세무사법 개정악법 국민선택 짓밟는다”며 분노를 터트렸다. 변협 부협회장이자 한국법조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정욱 변호사는 이날 시위에서 “법전원 도입 후 세무, 회계를 공부한 학생 다수가 변호사가 되어 회계세무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변호사가 다수 배출된 상황”이라면서 “의대가 확충되고 의료인력이 늘어나면서 1986년 한지의사제도가 폐지된 것처럼 세무사 직역이 변호사 직역에 흡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위에 참여한 B 변호사는 “직역 관련 법안이라 큰 반대가 예상돼 국회의장이 개정안을 직권상정하여 통과시키려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렇게 중대한 사안을 아무런 예고 없이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C 변호사도 “법전원을 도입한 취지가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법률전문가를 배출하기 위해서인데 유사직역 통폐합은 되지 않고 변호사 수만 계속 늘어나는 실정”이라면서 “세법 관련 법률업무를 하는 세무사를 법률업무 전문가인 변호사가 하지 못 하게 하려는 시도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전국 14개 지방변호사회 회장도 지난 21일 “이번 개정안은 주객을 전도시켜 세무업무 분야에 대하여 변호사의 신규진입을 막고, 세무사들의 직역 독점을 도와주기 위한 시도일 뿐 아무런 공익적 이유도 찾아볼 수 없다”고 개정안 결사반대를 천명했다.

또 “국민이 다양한 분야에서 보다 손쉽게 법률전문가인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입한 법전원 제도의 근간을 흔들게 될 것”이라며 우려를 전했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이사장 이형규)전국법학전문대학원 학생협의회(회장 최창훈)도 변협과 뜻을 함께 했다. 세 단체에서 21일 발표한 공동성명서에서는 “국민이 변호사와 세무사 중 어느 곳에 세무대리를 맡길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민의 선택권, 재산권을 보장하는 것”이라면서 “현행 세무사법이 변호사에게 세무사로서의 자격을 인정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법리를 재확인하고 있는 것과 다름 없다”고 주장을 내세웠다.

반면 한국세무사회(회장 이창규)는 시험 없이 세무사 자격을 받는 건 특혜이며, 1자격시험 1자격 취득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변협은 “세무사가 수행하는 조세에 관한 신청, 서류작성, 자문, 의견진술은 모두 ‘세법의 영역에 관한 일반 법률사무’로서 변호사법 제3조에 따른 변호사 직무에 속한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변협 직역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문성식 변협 부협회장은 “변호사가 세무자 자격을 자동 취득함으로써 발생한 문제가 없는데도 갑자기 변호사가 하던 업무를 축소한다는 건 부당한 업무 잠탈 행위”라면서 “법전원도 국회에서 직역별 전문변호사를 배출한다고 설립해놓고 이렇게 하던 일마저 하지 못 하게 막는다면 변호사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또 “대부분 의원은 이 사안에 관심이나 지식도 없는 상황”이라면서 “시급한 민생법안도 아니고 상임위원회에서 충분한 논의조차 하지 않은 상황에서 직권상정을 해 표결을 한다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변협은 이번 개정안 직권상정 시도를 시작으로 각 유사직역에서 변호사 직역을 잠탈하려는 시도가 줄이을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 중이다.

김현 협회장은 “이번 개정안 직권상정 시도를 모두가 힘을 합쳐 막아냈듯이 앞으로도 변호사 직역에 대한 잠탈 시도가 있을 때마다 발빠르게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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