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삶의 이정표이자 지식의 보고(寶庫)라지만, 책만으로는 온전히 배울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일 것이다. 개인의 사고의 영역을 확장하여 타인을 접하고, 그에 대해 생각하고 종국적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사고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삶의 여정에 있어서 이와 같은 과정이 중요하지 않은 때가 어디 있겠냐마는 법조인에게는 그 어떤 역량보다도 중요시된다.

의뢰인으로부터 사건을 수임 받아 그 종착역인 판결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변호사는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사건의 의뢰인, 증인, 소송의 상대방, 상대방의 변호사 또는 검사에서부터 판사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이들을 만나고 의견을 조율하고 때론 치열하게 다퉈가며 사건을 해결해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의뢰인과의 신뢰를 쌓는 일이 사건 해결의 근간이 될 것이다.

시험 합격을 위한 고독한 수험과정에서는 결코 함양할 수 없었을 관계에 대한 미학을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차근차근 배워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우리는 혼자서 걸을 수 없던 갓난 아이였을 무렵부터 사회로 나갈 준비를 마쳐가는 대학교육 과정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살아왔지만, 지금처럼 실무에 대한 관점을 고루 갖추어 가며 동시에 미래지향적 관계에 대하여 함께 고민해갈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법학전문대학원 교육과정에서는 오늘날 함께 경쟁하며 공부하는 동기가 내일 같은 분야에서 일하게 될 파트너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고, 리걸클리닉 활동 등을 통하여 실제 상담서를 접하며 나의 답변서가 장래 의뢰인의 관계의 초석이 된다는 점 역시 배우고 있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을 존중하면서도 나의 의뢰인을 지키고 우리의 논리를 세우는 방법도 찾아가게 된다.

워낙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사회인 탓에 인공지능(AI)에 의한 재판도 법조계의 새로운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1일, 미국 위스콘신주(州) 대법원은 AI 알고리즘 자료를 근거로 형사 재판 피고인에 중형을 선고한 지방법원의 판결이 “타당하다”고 인정하며 법률서비스 영역에서의 인공지능 활용의 포문을 연 바 있다. 이와 같은 변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경쟁력은 ‘인간의 관계성’일 것이다. 의뢰인과 변호인, 그리고 각종 이해관계인이 모두 함께 소통하며 합리적인 판결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관계에 대하여 고민할 수 있다는 점, 그것이 우리가 가진 관계의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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