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9월 1일부터 시작하는 100일간의 정기회, 그리고 연말까지 이어지는 임시회는 예산을 둘러싼 전쟁이다. 소관 상임위원회에서의 각개 전투, 예비심사가 이루어지고 나면, 연말로 달려가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를 거쳐 전쟁의 클라이막스인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소위 ‘계수조정소위’)에서 내년도 예산의 세부적인 금액이 사실상 결정된다.

2018년도 예산안 국회 심사의 진행 단계를 보면, 겸임 상임위(정보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와 여야 간 대립으로 심사를 못 마친 몇몇 상임위를 제외한 대부분의 상임위가 예비심사를 마무리하여 그 결과를 예결위에 보냈고, 내가 속한 상임위인 국토교통위원회의 경우는 2018년도 예산안 예비심사가 11월 초에 마무리되었는데, 내가 담당하고 있는 파트는 국토교통부의 철도국과 종합교통정책관실(버스, 택시 등)로, 2018년도 정부안으로 4.9조원이 제출되어 이번 상임위 예비심사에서 약 1조원의 예산(철도 9869억원, 종합교통 146억원)이 증액되었다.

가끔은 1조원이 넘는 숫자를 종이 위에서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면, 이 숫자가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라는 쓰잘데기없는(?) 감상도 들지만, 종이 위에서 시작된 이 예산이 국회의 심사를 거쳐 확정되고, 이를 행정부에서 집행하면서 우리나라가 내년에 추진하는 모든 사업의 기초가 된다는 생각에 다시 사업 설명자료 등을 뒤적이게 된다.

이렇게 상임위 예비심사에서 대폭 예산이 증액된 이유는 철도부문 예산이 현 정부의 SOC예산 축소 기조에 따라 전년(7.1조) 대비 2.4조원이 감액된 4.7조원으로 정부안이 제출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최소한 상임위 단계에서라도 예산이 반영되어야 국회의원도 지역에서 자신의 역할과 노력을 인정받을 수 있고, 상임위 단계에서 반영되지 않은 예산을 예결위에서 새로이 끼워 넣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상임위에서 삭감된 예산을 예결위에서 되살리는 건 더 힘든 일이고.

쌓여있는 국회의원의 예산 서면질의와 어느 사업인지도 모를 증액 요구, 증액요구금액조차 기재되지 않은 자료들을 밤새 정리하며, 내가 받고 있는 공무원 월급에 비해 과도한 업무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결국 이것들은 전국의 모든 철도, 택시, 버스 등 종합교통에 대한 민원, 즉 교통정책에 대한 국민의 요구와 목소리들이 걸러지고 걸러져서 숫자로 요약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자기위안을 삼는다.

철도 분야에 대해 잠깐 얘기하자면, 전국에서 철도 민원이 없는 곳은 지금까지 내가 겪기로는 제주도, 울릉도뿐인 것 같다. 땅 끝 해남군에서도 해남을 경유하여 제주로 이어지는 해저고속철도 관련 건설 소요 제기가 있고, 도시철도 사업은 노선 신설 뿐 아니라 건설 중인 노선의 역 추가, 노선 변경에 대한 주민들의 요구도 넘쳐 난다. 물론 내 옆자리의 도로 담당은 나보다 몇 배 많은 민원과 사업을 안고 있어 나름 위안을 삼고 있다.

법대를 나와 입법고시와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법제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주로 법률만 들여다보던 나에게 국가의 재정은 낯설기만 했었고, 지금도 예산에 대해서 자신 있다고 말하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변호사로서 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재정에 관하여 들여다 볼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과, 400조가 넘는 예산과 기금이 어떤 사정으로, 어떻게 결정되는지 그 과정에 참여하는 것도 변호사로서 법정에서 소송을 수행하며 느끼는 보람만큼이나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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