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스턴 처칠은 미국사에서 가장 멋있는 순간을 1865년 4월 9일에 미국의 애포매톡스(Appomattox)에서 있었던 북군의 사령관 율리시즈 그랜트 장군과 남군의 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 사이에 있었던 항복식 장면이라고 한 바 있다. 처절하게 싸운 상대답지 않게 인정 넘치고 소박한 그 항복식 며칠 후에 링컨 대통령이 암살을 당하게 되는데 링컨이 암살당했을 때 가장 낙담하고 장래를 걱정한 사람들이 바로 남부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만 4년에 걸친 잔혹한 전쟁 후에 북부에 의한 혹독한 보복이 있지 않을까 염려한 때문이었다. 그런데 링컨의 뒤를 이어 미국의 1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앤드류 존슨은 부통령 당시 링컨의 유지를 받들어 남부에 대하여 관대한 정책으로 일관했다. 이미 링컨은 재선대통령 취임사에서 전쟁의 종식과 북부의 승리를 목전에 두고서 아무에게도 악의를 품지 말 것(with malice toward none)을 호소한 바 있었다.

남부에 대한 철저한 보복을 추구하는 북부의 정치지도자들의 뜻을 따르지 않게 되자 앤드류 존슨은 비록 상원에서 부결되긴 하나 하원으로부터 탄핵소추까지 당하게 되는 어려움을 겪게 되지만 끝까지 남부를 포용하는 정책을 펴게 된다.

남부연합의 대통령이었던 제퍼슨 데이비스에 대해서는 링컨 대통령의 암살 후 혹시 그 암살 사건에 그가 연루되지 않았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그를 구속했다가 보석으로 석방시킨 후 그에 대해 영구히 재판을 하지 않는 조치를 취했다. 리 장군은 고향인 버지니아로 돌아가 대학의 총장으로 취임하여 후학들에게 애국하는 방법을 가르치며 일생을 보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미국은 남북전쟁 후 서서히 통합되어 굳건하게 하나가 되어 갔고 이제 미국의 분열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도편추방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종종 정적의 제거 수단으로 사용되곤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유명한 아리스테이데스가 BC482년에 당시의 유력 정치인 테미스토클레스의 선동에 의해 도편추방 당했고 그런 테미스토클레스도, 제2차 페르샤전쟁에서 살라미스 해전을 승리로 이끄는 최고의 영웅적 활약을 하였음에도 나중에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에 의해 도편추방을 당하고 만다.

로마사에서는 제2차 포에니 전쟁 당시 한니발의 군대를 자마전투에서 격파하여 로마에 승리를 안긴 영웅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그 후에 사소한 전쟁배상금횡령문제에 휘말려 정적들에 의해 탄핵돼 로마를 배은망덕한 조국이라고 원망하며 살다가 죽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아테네도 로마도 이렇게 치사한 정적 제거가 계속되면서 결국 그 사회가 활기를 잃고 서서히 몰락으로 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이제 선거제도로서는 제 궤도에 올라서 여야의 정권교체가 2번에 걸쳐 이루어진 셈이다. 그런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의 비리나 정책의 실패에 대한 수사나 재판, 감사원의 감사가 정권의 입맛에 맞추어서 이루어지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게 돼 씁쓸한 느낌을 받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물론 잘못이 있다면 조사와 처벌은 있어야 할 것이다. 다만 우리 사회에 한없이 결핍되어 있는 것이 관용의 정신이고 이러한 정치문화가 우리 국민을 얼마나 갈기갈기 분열시키고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지 이제는 심각하게 되돌아보면서 법조인들은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더욱 깊이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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