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바다를 매우 좋아합니다. 바닷물에 들어가 물살에 몸을 맡기는 것도 좋고, 발만 살짝 담그는 것도 좋고,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바다이기만 하면 물고기가 뛰노는 모습이 보일 정도로 맑고 투명한 바다도 좋고, 거칠고 사납게 파도가 치고 해무가 자욱하게 끼인 바다도 좋습니다.

그냥 널찍하니 끝을 알 수 없게 펼쳐져 있는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해지고 케케묵은 감정들이 씻겨 내려가는 듯해서, 서울에서만 거의 평생을 살아온 저는 언젠가는 바닷가에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도 갖고 있습니다.

작년에 시보 생활을 바다가 가까운 곳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에 부산으로 신청하여 2개월간 부산에서 생활했습니다. 생각보다 바다가 멀어 매일같이 볼 수는 없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점에 행복했습니다. 부산만큼 도시의 면을 다 가지면서도 바다를 즐길 수 있는 도시는 다시는 없을 것 같을 만큼 부산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그런 감정을 담뿍 담아 오랜만에 본 부산이 고향인 동기에게 “이런 곳이 고향이어서 부럽다”고 말하니 그 동기는 자신은 바다를 보면 그냥 물이구나 한다고 하더군요. 바다를 봐도 별다른 감흥은 없다고 말입니다. 이렇게도 멋진 바다를 고향으로 두고도 그냥 물이라니 순간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익숙해지는 순간부터 ‘그것’의 가치를 잊는 일 말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던 것들이 원래는 너무 가치가 있는 것이었고, 알아채지 못하다 어느 순간 잃고 나서야 가치를 깨닫는 일 말입니다.

찬바람이 불어 벌써 한해의 끝자락에 다 닿아와 있는 요즈음 문득 생각해봅니다. 그 동기에게 바다가 그러하듯, 너무나도 소중하고 값진 가치를 가진 무언가를, 사람을 곁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익숙함에 물들어 그 가치를 잊고 있는 게 아닌지를. 그리고 스스로에게 바라봅니다. 한해를 주위를 둘러보고 그런 익숙하지만 가치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마무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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