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 10월 10일 이렇게 말했다. 이 발언은 13일 국회 법사위가 실시한 헌재 사무국 국정 감사를 파행으로 몰고 갔다. 대변인 발언 중 어떤 부분이 논란을 일으켰을까. 청와대가 헌재소장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는 부분이다.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김 권한대행의 이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법과 규칙은 헌재소장 궐위 시 재판관회의에서 권한대행을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이수 재판관은 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 3월 14일 재판관 회의에서 권한대행으로 선출됐다. 권한대행을 맡았던 이정미 전 재판관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 뒤 임기 만료로 퇴임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5월 19일 김 재판관을 헌재소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하지만 국회는 9월 11일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것이다.

김 재판관은 권한대행을 사퇴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이는 빗나갔다. 오히려 9월 18일 헌법재판관 전원이 김 재판관의 권한대행 계속수행에 동의했다. 이때부터 헌재는 정쟁의 불씨를 안게 됐다. 국회가 부결시킨 김 재판관이 사실상 헌재소장 권한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와대가 김 재판관의 권한대행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발표했다. 무엇이 논란을 일으켰을까. 지금 권한대행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데, 청와대가 굳이 이를 ‘유지’하겠다고 강조한 것이다.

말은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담는다. 청와대가 속마음을 드러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그 속마음이란 무엇일까. 아마 이런 것 같다. ‘헌재소장 인준이 국회에서 부결돼 일이 꼬였어. 후임 소장으로 임명할 적임자도 마땅치 않아. 새로운 소장을 지명하지 않고 계속 미루는 건 어떨까. 김 권한대행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거지. 김 재판관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9월까지 말이야. 그동안 국회에 헌재소장 임기의 불확실성을 문제로 제기하고 임기를 명확히 하는 입법을 촉구하는 거야. 그동안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야.’

청와대는 후임 헌재소장을 지명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은 없다. 하지만 대변인의 발언 속에 후임 헌재소장을 지명하지 않고 권한대행 체제를 내년 9월까지 그대로 유지한다는 속마음을 담은 것이라면, 이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국회에서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킨 사람을 청와대가 권한대행이라는 형식으로 장기간 헌재소장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하게 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 또한 후임 헌재소장을 임명하는 것은 대통령의 권한이고 의무이므로, 헌재소장을 지명하지 않고 장기간 결원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헌법기관 구성 의무를 방기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다. 상대방을 나쁜 놈이라고 욕하다가, 입장이 바뀌면 나쁜 짓을 배워서 따라하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보수와 진보는 이념으로 망하지 않았다. 보수는 부패와 무능으로 스스로 무너졌다. 진보는 오만과 독선으로 폐족을 자처했다. 역사책이 잘 팔리는 이유가 있다. 읽는 즉시 잘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다시 역사책을 한권 읽어보자. ‘나는 꼼수다’라는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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