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봄 아내는 아이를 출산하였고 지금은 육아와 시험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아내가 여름에 ‘82년생 김지영’을 읽어보라고 강력 추천하였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어 미루어 놓았다가 추석 명절이 끝날 때쯤이 되어서 2시간 조금 넘는 시간을 들여 일독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가상의 인물인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여자의 어린 시절부터 학창시절, 직장생활, 결혼생활을 다루면서 출산·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전업주부를 주인공으로 삼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평범한 여성이 겪고 있는 일상의 차별과 사회 구조적 불평등을 그린 소설이다.

이 책의 주인공보다 나이도 많고 성별은 다르지만 이 책에 나오는 내용과 내가 경험한 일들이 크게 다르지 않아 적잖이 놀랐다.

당장 최근에도 태어난 아이의 성(姓)을 결정하면서 서로 합의(‘반’씨는 성 소수자이다?)를 하였지만 남자의 성을 따랐고, 새벽에 깨는 아기를 챙기다보면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어 나는 다른 방에서 자거나, 아기가 보채면 즉시 달랠 수 있도록 아내가 아기 바로 옆에서 자고 나는 떨어져서 잤다.

한번은 아내가 잠시 외출하는 동안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를 달래지 못해 혼비백산한 후로 아내는 저녁 7시 전이면 집으로 귀가하는데 나는 업무의 연장이라며 모임에 참석해 술도 한잔 하고 늦게 귀가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아내도 공부를 하고 있어서 밤에 잠을 잘 자야하고, 시간이 많이 필요한데도 양보를 해왔던 것이다. 남편의 일과 아내의 공부는 모두 중요한 것인데 나는 더 많은 양보를 받으면서 그것을 혹시 당연하게 생각하였던 것은 아닌지 깊이 반성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청년변호사들은 결혼도 하고 육아도 하면서 동시에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대통령에게 추천한 정치인이 ‘정작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사람들은 남성’이라고 말했는데 나 역시 공감이 되었고, 독서의 계절에 이 책을 읽고 가정, 직장에서의 인식 변화는 물론 더 중요한 제도적 변화까지 뒷받침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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