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가객 김광석의 죽음은 그의 노래 제목처럼, 그렇게 잊힐 뻔 했다. 이상호 기자가 다큐멘터리 영화 ‘김광석’을 통해 제기한 타살 논란이 있기 전까지 말이다. 김광석이 이전에 알려진 대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라 주변인에 의해 타살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요지다. 영화를 제작한 이 기자는 지난달 김광석의 딸 서연씨에 대한 유기치사 혐의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마친 뒤 자신 있는 목소리로 “국민은 진실을 원한다”고 말했다.

자살과 타살, 진실과 의혹 그 중간쯤에 선 서씨는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서연씨가 이미 오래 전 사망했고, 이 사실을 숨긴 채 김광석 유족과 저작권 수익을 두고 다툼을 벌였다는 점, 그리고 남편 친구와 내연 관계를 유지했다는 의구심이 커지면서 그의 반박은 힘을 잃었다. 대중은 석연치 않은 서씨의 인터뷰 내용은 물론 말투와 몸짓 등 모든 비언어적 표현까지 증거로 들며 그의 유죄를 확신했다.

적어도 한 사람을 살인자로 몰기에 이는 너무 성급하다. 궁박한 것은 서씨의 서툰 반박이 아니라 그가 휩싸인 의혹 어디에도 김광석의 타살을 입증할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이제껏 확인된 일각의 사실은 그가 ‘나쁜 아내’ ‘나쁜 여자’였음을 드러낼 뿐이다. 서씨가 무고하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비도덕적 행실을 뺀, 어떤 나머지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그의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언론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시절, 성범죄 사건을 심리했던 한 판사는 내게 “이런 일이 그냥 일어났겠느냐, 대개 피해자들은 남자관계도 복잡하고 유사 사건에 휘말린 경험도 많다”고 말한 적 있다. 엄연한 증거와 기록을 무시한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해당 판사가 다른 곳으로 전보하기 전까지 난 줄곧 그의 판결을 주시했다. 보고 싶은 것에만 치우쳐 선택적으로 증거를 취사선택하는 ‘확증 편향’에 빠져 판단오류를 범하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법의 권능을 행사하는 법관이라 할지라도 사실이 가리키는 진실을 외면한 채 잘못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하물며 스타 기자에게도 예외는 없다.

난 이상호 기자의 선의를 믿는다. 저널리즘에는 공소시효가 없고 감춰진 진실이 있다면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밝혀야 하는 것이 그 의무다. 그러나 의혹만으로 사람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은 문명사회가 정한 약속이며 이는 짓지 않은 죄에 묶여 괴로워했던 많은 사람의 삶으로 증명된다. 과거 조봉암 선생의 간첩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던 고 유병진 판사가 남긴 “무죄 선고는 한 사람을 창조하는 것”이라는 말이 맴도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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