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대통령은 “4차 산업혁명의 기초 골격이라고 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활용도를 높일 수 있게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또 “자율주행차, 스마트공장, 드론산업 등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지능형 인프라·친환경 에너지를 기반으로 스마트 시티를 조성하는 등 기존 제조업과 산업에도 지능을 불어넣어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규제 샌드박스의 도입도 약속했다. 이에 맞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특히 특히 스마트 의료와 바이오산업, 지능형 금융 및 유통, 디지털 제조업 전환, 친환경 정밀농업 등 대표 신산업도 열거했다.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데자뷔가 느껴진다. 지난 정부에서도 끊임없이 되풀이되던 주장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주장만 있었던 게 아니라 법안들도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규제개혁특별법안, 규제프리존특별법안 등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왜 진전이 없었을까? 이에 대한 반성이 없이는 또다시 공허한 말의 잔치로 끝날 우려가 있다. 여러 이유가 있다. 지면의 제약상 한 가지만 살펴보자.

위에서 대통령과 과기정통부장관이 명시적으로 언급한 산업은 모두 데이터의 활용이 전제되어야 한다. 예컨대 인공지능은 데이터와 컴퓨터파워 그리고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인다. 오늘날 컴퓨터파워나 알고리즘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결국 얼마나 풍부한 데이터를 제공해서 지속적으로 학습(learning)시키느냐에 인공지능의 수준이 달려있다. 아무리 좋은 머리를 타고났어도 책도 안 읽고 사유하지도 않는 학생에게 어려운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데이터에는 개인정보도 포함된다. 개인정보 감수성은 사람마다 다르다. 쉽게 자신의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도 있고, 극히 민감한 사람도 있다. 아마도 제도화를 한다면 이 양극단이 아니라 그 가운데 어디쯤에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균형점이 있을 것이다. 이 문제에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4차산업혁명의 견인을 통한 혁신경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작은 것에서부터 성공의 경험을 축적해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 규제체계가 일반적으로 엄격한 포지티브방식과 규제기준의 경직성을 특징으로 하고, 이러한 규제를 완화하는 데 대한 저항이 강력한 것은 새로운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규제를 완화해서 좋아졌다는 공동의 경험에 대한 기억이 적다. 규제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강해지는 국면에서 정작 불필요한 규제는 저항에 막혀 유지되거나 변형된 형태로 남고 필요한 규제들이 함께 사라져버리는 일도 많았다. 이를 극복하려면, 현재의 규제틀을 통째로 바꾸려 하지 말고, 예외적인 상황에서 규제완화를 허용해주는 방식으로 시작할 필요가 있다. 예외적 상황을 유연하게 흡수할 수 있는 규범체계, 일반법보다는 특별법을 통해 합의할 수 있는 부분에서부터 규제완화를 시도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개인정보보호법을 개정하려 하지 말고, 현재의 개인정보보호의 틀을 유지하면서 특별법에서 신산업분야에서 일정한 요건 하에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자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고 돌아가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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