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추석 명절이 좋다. 친정 부모님을 뵈러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 멀지 않은 지역에 사시니 자주 찾아뵈어야지 매번 다짐하는데도 돌아보면 설, 추석, 생신날, 어버이날 하여 1년에 겨우 너댓번 친정에 가게 된다. 갈 때마다 어머니는 반가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즐거워하시면서도 말씀은 “바쁘니 어서 가거라” 하신다.

늘 당신의 기쁨보다 자식들을 먼저 헤아리신다. 자녀들이 장성하여 제각기 자리잡고 살고 있음에도 어머니는 치장을 즐겨하지 아니하시어 마치 자식이 없는 분 같다. 치장은커녕 속사람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시며 아예 꾸미기를 무시하신다. 딸을 둔 노인은 멋쟁이고, 아들만 둔 노인은 그 반대라는데 어머니에게는 그 속설이 통하지 않는다. 좋은 것을 사드리면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다 주어 버리시고, 정작 당신은 때깔이 안 좋은 것만 쓰신다. 이제 80세가 넘으셨으니 인생을 즐기며 편히 사시라고 하여도 “움직이는 것이 복이다” 하시며 잠시도 쉬지 않으신다. 입으로는 어머니에게 “속이 중요하지만, 요즘 세상은 겉도 중요하다”고 투정어린 소리를 하지만,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천국에 가지 못할지라도 어머니는 천국에서 환영받을 분이라고 굳게 믿는다.

나에게는 또 어머님(앞에 ‘시’자를 붙이면 의미가 분명해진다)이 계신다. 나를 낳으신 분은 아니지만 나는 이 세상 누구보다 어머님을 존경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말없는 사랑을 몸소 가르쳐주신 분이다. 어머님을 자주 뵙지만 그 시간이 싫지 않다. 만날 때마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인생의 가르침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제는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하는 허그(hug)가 빠지면 허전하다. 결혼 후 해마다 명절 때면 어머님 옆에서 조수 노릇을 하면서 국물의 맛을 내는 법, 고기요리 간을 정확하게 맞추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요리를 거들면서 ‘빨치산을 피해 숨어계시던 부친께 어두운 밤 몰래 음식을 날랐다는 처녀 적 이야기’ ‘서울에 올라와 고생하시던 이야기’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을 뻔한 이야기’ 등 대하소설 못지않게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결혼 후 26년이 넘도록 어머님의 조수 노릇만 하다가 드디어 3년 전부터 전권을 넘겨받아, 내가 직접 명절음식을 준비한다. 말하자면 곳간의 열쇠를 넘겨받은 셈인데, 어머님이 80세를 넘어 기력이 약해지신 탓이다. 아이들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여 어머님께 쏟아놓으면, “너의 자식이 아니다. 너는 그냥 지켜보며 기다리며 기도만 하면 된다”하시며 뾰쪽하게 솟아오른 내 마음을 부드럽게 가라앉혀 주신다.

어머니와 어머님, 두분이 계셔서 나는 행복하다. 특히 긴 이번 추석 연휴에 더욱 편안하게 시간의 쫓김에서 벗어나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다. 늘 이성을 앞세우는 법률가로서 명절이 되면 내 안에 가득한 아폴론적인 이성은 잠시 재워두고 어머니와 어머님을 통해 디오니소스적인 감성을 충분히 받아 누린다. 그러면서 그동안 아이들에게 이성만 강조하면서 시간을 아껴라, 쉼없이 배우며 절제해라, 집단의 규칙을 지켜라는 것만 강조하지 않았는지, 그로 인해 영혼의 편식이 된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먼 훗날 아이들이 나를 떠올릴 때, 나로 인하여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어머니, 어머님의 모습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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