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보러 가자.” 대학 시절, 엠티 장소를 정하고 있던 중 목소리 큰 누군가의 발언이었습니다.

‘바다’라…. 저는 으레 강원도 인근 동해바다를 떠올렸습니다. 너무 멀지 않느냐는 의견을 냈지만, 다른 친구들이 “멀긴 뭘, 1시간이면 갈텐데!”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야기한 곳은 ‘인천’이었습니다.

얼마 전 해양경찰청이 부활되면서 자리를 찾은 경위 한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시 인천 송도의 해양경찰서로 오게 되었다면서 머쓱하게 웃으시더니, 문득 꺼낸 말이 “인천이 항구 도시인데도, 여기 계신 변호사님들 중에는 해양 사건을 전문으로 하시는 분을 찾기 어렵네요”였습니다.

인천에서 태어나 여기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닌 후 이곳에 업을 두고 있으니 ‘인천 토박이’라 할 만한데도, 저는 이 도시가 ‘바다의 도시’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인천지방변호사회에서는 올해 5월부터 소식지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회원 수가 급증하고 지방변호사회 차원의 다양한 활동이 이어지면서, 회원들 간의 소통의 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소식지는 내부 위원회 활동이나 회원 동정을 알리는 역할뿐만 아니라 회원들의 글을 싣기도 하고, 지역 사회 이슈들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소식지의 창간호부터 편집위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인천시의 해양친수도시 계획과 시립박물관의 해양도시 특별전 등 지역사회와 연계된 우리 회의 여러 활동이 맞물려 ‘바다의 도시’라는 주제로 소식지를 준비하게 되면서, 자연히 인천의 해양 역사에 대해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인천시립박물관장님을 만나게 된 자리에서 위와 같은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자, 관장님은 “인천은 대한민국의 해양사를 쓰기 시작한 곳임에도 회색 공업도시처럼 여겨져 왔지요”라며 웃으시고는, “바다에 빛을 비춘 등대의 역사도 인천에서 시작되었어요”라고 하셨습니다.

인천은 과거 다양한 국가들과 통상수호조약을 체결해 주권국가임을 대외에 알리고 인정받은 곳이며, 우리나라 최초 해군 생도 양성기관인 ‘조선수사해방학당’이 설립된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 영토의 경계지역 넘어 오가는 물품에 관세를 부여하는 ‘해관(海關)’ 또한 인천에 처음 설치되었고, 최초의 천일염 산지인 주안염전(朱安鹽田)의 개설되는 등 바다를 자원으로 활용하는 해양 산업이 시작된 곳도 인천입니다.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았던 임해유원지 월미도와 국내 최초의 수족관·해수욕장 등 해양관광의 태동이 모두 인천에서 비롯되었고, 아시아 최초로 인천항 갑문이 설치됐으며 광복 후에는 100만평에 이르는 내항으로 발전시켜 경제 발전의 토대를 이뤘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습니다.

지난 8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을 출간한 유홍준 교수는 서울 사람으로 태어나 서울 사람으로 일생을 살았으니 서울의 구구한 내력을 알리는 것, 즉 생활문화사의 증언에 대한 의무감이 있었다면서, 책 첫 머리에 ‘자랑과 사랑으로 쓴 서울이야기’라고 적으셨더군요.

인천의 역사적 사실들을 정리하면서 저도 ‘자랑과 사랑으로’ 우리회 소식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6년 차에 접어들며 전문 영역을 고민하던 시점이었는데 해양의 도시에서 이에 걸맞은 업을 가진 변호사로서의 꿈을 꾸어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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