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차 부산지방소속 변호사인 내가 대한변협신문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큰 선물이었다.

동아대학교 로스쿨 재학시절에 맡게 되었던 로리뷰 편집장의 일을 했다면 변호사가 된 후 대한변협신문의 편집위원으로 일할 수 있게 됐다. 편집장으로서 했던 일은 저명한 법률가들을 인터뷰하고, 수많은 이에게 법학논문투고를 요청하고, 이를 바탕으로 취합한 자료들을 편집하는 작업이었다. 또한 편집위원들과 회의를 하고 편집심사과정을 거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편집장을 맡았던 2012년경 미 대통령 오바마가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주미대사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질문을 한 이들에게 작은 선물을 주는 이벤트가 있었다. 우연히 이벤트에 참여해 “하버드 로스쿨 편집장을 맡았던 일이 지금 대통령의 역할을 하는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라는 질문을 하여 오바마의 사인이 담긴 자서전을 받았다.

그런 잠깐의 기쁨도 있었지만 저널을 발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원고 모집이 어려워 출간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내가 대한변협신문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내용은 예전에 로리뷰 편집장으로서 했던 일과 상당히 유사한듯하다. 지난 6개월간 대한변협신문 편집위원으로서 했던 일은 인터뷰와 원고섭외 그리고 투고된 원고의 게재여부를 심사하고 편집하는 작업이었다.

한편 특정 사람들 중심으로 기고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특히 지방변호사들의 기고가 부족한 것은 자신의 숨은 잠재력을 발휘하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 같아 더욱 아쉽다.

나는 내가 가진 능력을 축소시키는 자신을 볼 때마다 페르마를 떠올려보곤 한다. n이 3 이상의 정수일 때, x^n+y^n=z^n을 만족하는 양의 정수 x, y, z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페르마 정리’는 그가 판사시절 재판하는 과정에서 메모한 내용이었을 것이다.

지방의 작은 변호사였던 그는 페스트가 창궐했던 시절 판사 수가 부족해져 뜻하지 않게 재판업무를 맡게됐다. 재판을 진행 하면서도 꾸준히 수학을 취미로 연구하고 이를 데카르트와 같은 수학자들과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그가 발견한 극대값과 극소값은 개념은 뉴턴에게 계승되어 미적분학을 발전시키는 토대가 되기도 했다.

비록 지방의 작은 법조인이었지만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관찰했을 때 뛰어난 수학자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목받지 못하는 작은 사실에도 관심을 갖고 이를 연구하여 발견한 사실을 기록할 때 작은 발견은 소중한 가치를 갖게 될 것이다. 만약 페르마가 자신이 발견한 작은 법칙을 메모하고 기록하지 않았더라면 땅에 묻히지 않았을까.

이처럼 대한변협의 구성원들도 혼자 간직하고 있는 자신의 경험과 관찰을 신문기고 를 통해 함께 공유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대한변협에 투고하는 변호사 한 사람의 작은 의견이 법조계를 큰 광장으로 인도하는 작은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져본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