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광석(1964.1.22-1996.1.6), 84년 노찾사 1집, 88년 동물원 1집(거리에서), 2집(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에 참여한 후, 89년 솔로로 데뷔하여 1집(기다려줘), 91년 2집(사랑했지만), 92년 3집(나의 노래), 94년 4집(일어나, 서른 즈음에)를 낸 싱어송라이터다. 특히 91년부터 95년 8월까지 학전, KMTV홀 소극장에서 세운 1천회 공연 기록은 그의 대중성, 음악성과 함께 그의 성실성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필자는 한 때 그의 자유자재 스리핑거 기타음 위에 또박또박한 발음을 통해 타전하는 사랑, 자유, 희망의 메시지와 멜로디를 사랑하였기에 96년 초 느닷없는 그의 부고 뉴스를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기 싫었다.

소설가 마광수(1951.4.14-2017.9.5.), 77년 박두진 시인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배꼽에’ 등 6편의 시로 등단한 후, 80년 ‘광마집’을 시작으로 89년 ‘가자, 장미여관으로’ 등 10여 편의 시집을, 마광수 筆禍 사건이 된 문제의 ‘즐거운 사라(91년)’ 등 30여 편의 소설을,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89년)’ 등 20여 편의 에세이집을 펴낸, 스스로 광마(狂馬)라 칭한, 음란과 표현 사이 논쟁의 진원지, 그 마광수다. 그의 최근 사망 보도가 났다. 92년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으로 구속, 95년 유죄 확정 및 면직, 98년 복직, 2000년 재임용 탈락결정 및 보류, 그리고 우울증에 의한 휴직 및 복직의 반복, 2016년 정년퇴임 등. 그의 인생유전이 참으로 파란만장하다.

두 예술가 모두 사인(死因)은 자살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 목을 맸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상호 고발기자가 감독한 김광석 다큐멘터리가 화제다. 영화에 따르면, 부검학상 목을 매 자살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유일한 목격자인 미망인의 진술이 계속 번복되며, 미망인의 외도 정황이 있었는데 사망 직전 고인이 이를 본격적으로 문제제기할 상황이었고, 고인 사후 저작권 관리 추이가 미망인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는 것이다. 영화 상영 이후, 고인의 딸마저 미망인의 부양을 받다가 이미 10여년 전에 사망하였다니, 영화가 제기한 의혹은 좀 더 부각되고 그에 대한 해명은 이제 수사로 본격화될 것 같다. 차제에 김광석이 우리 곁을 떠난 경위가 분명하게 해명되길 바란다.

마광수 교수는 유서를 남기고 사망하였으니, 분명 스스로 목을 맨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는 91년에 이미 ‘자살자를 위하여’란 시로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니다/그러니 죽을 권리라도 있어야 한다/ …(중략)… /자살자를 비웃지 마라/그의 용기 없음을 비웃지 마라/그는 가장 용기 있는 자/ …(후략)…’를 써 두어 미래를 대비하였으니, 그의 생물학적 자살을 믿어 줘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마광수 교수의 자살을 접하며 필자의 대학 시절 경험이 떠오른다. 필자는 대학 시절 그로부터 두 번 충격을 받았다. 그 첫째가 대범한 파격 때문이었다면 그 둘째는 의외의 예의바름에서였다. 그는 300여명 수강생을 앉혀 놓고 강단 이리저리를 옮겨 다니며 담뱃불을 거의 꺼뜨리지 않는 체인 스모킹을 즐겼다. 교수가 엄숙한 강의시간에 연신 담배를 피워 물면서 "피우고 싶으면 너네도 피워" 하는 식의 파격은, 당시까지 담배는 어느 후미진 곳에서 어른 몰래 피워 무는 것이라 여겼던 시골 촌놈 필자에겐 그야말로 문화 충격이었다. 지독한 비염 때문이었는지 그는 추임새처럼 킁킁거리며 강의를 이어 갔는데, 자욱한 담배연기와 그 간헐적인 킁킁거림이 시청각적으로 뒤섞여 그의 인상은 강렬하고 강력하였다. 그런데 강의실의 독재자인 그를 강의실 밖에서 마주쳐 인사라도 할라치면, 거의 90도 각도로 인사를 받아 주는 등 학생을 깍듯하게 대하는 것이 참으로 의외였고 황송하였다. 당시는 물론이고 현재까지 필자는 그보다 더 깊은 각도로 학생에게 인사해 주는 교수를 보지 못했다.

그의 평소 태도를 상기하면서 그의 문학관을 따라가 보자. ‘기성도덕과 가치관을 추종하며 스스로 점잖은 교사를 가장하는 것이 작가로써 가장 자질이 나쁘다. 문학은 무식한 백성들을 가르치고 훈도하여 순치시키는 도덕교과서여서는 안 된다. 문학의 참된 목적은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탈출이요, 창조적 일탈이다’ 물론 그 창조적 일탈을 위해 꼭 ‘사라’와 ‘로라’같은 캐릭터를 만들어 내고, 그들의 변태 성행위를 시시콜콜 그렇게 써 놓아야만 했을까? 하는 (그에 따르면 아직도 꼰대 같은) 반감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법조계가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학기 중에 교수를 구속하고, 학계는 그 재판 과정에서 논문실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재임용 탈락결정을 한 조치들에 과연 토론과 찬반양론의 여지가 없을까? 하는 아쉬움도 여전히 남는다.

가객 김광석이 우리를 떠난 이유를 밝히는 것이 규명(糾明)의 대상이라면, 소설가 마광수가 우리를 떠난 이유를 따져 보는 것은 성찰(省察)의 대상이라 하겠다. 필자로서는 두 망인 모두 우리 사회에 좀 더 머물렀어야 할 예술가이고, 그랬다면 우리 사회는 그들로부터 좀 더 풍부한 감성과 다양한 영감을 얻었을 것이라고 본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