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변호사를 하면서 좋은 것 중 한 가지는 다양한 부류의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것은 의뢰인과의 만남이다. 변호사는 어떤 마음으로 의뢰인을 만나야 할까.

좋아하는 시 중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가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는 / 그의 과거와 / 현재와 / 그리고 /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부서지기 쉬운 /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변호사를 찾아오는 의뢰인은 가까운 지인보다는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변호사에게 있어 의뢰인은 ‘낯선 방문객’이라 할 수 있다.

의뢰인들 상당수는 상담 후 “좋은 일로 찾아 봬야 하는데, 이런 일로 찾아와서 죄송합니다”라고 하신다. “어려운 일 아니면 변호사 찾을 일 있으시겠어요? 여태까지 변호사 찾지 않고 살아 오셨다면 잘 살아오신 것이고 감사하셔야 합니다”라고 답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재판은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하는 사건이다. 본인이 실수로 잘못해서 발생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경우도 있고, 오해에서 비롯된 경우도 있으며,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건이 발생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변호사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억울함과 분노를 가지고 온다. 민사사건이든 형사사건이든 재판을 하거나 받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이기도 하다.

의뢰인 인생에서 재판이라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견디어 내기 위해 찾는 사람이 변호사다.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가장 어려운 시기를 함께 하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재판은 인생에 있어 어느 한 순간에 발생한 사건이기는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오지는 않는다. 당사자의 가정환경, 살아온 삶의 방식, 가치관, 인간관계 등이 종합적으로 엮여서 발생된 사건이므로 의뢰인의 과거가 온다.

소송을 제기해야 하나 포기해야 하나, 기소를 당할까 불기소처분을 받을까, 양보하고 조정으로 끝내야 하나, 판결을 받아야 하나 등 재판을 시작하기 전부터 판결이 확정될 때 까지 분쟁으로 얽히고 설켜 있는 당사자의 삶의 실타래를 풀어가며 분쟁 속에서 겪는 정신적 고통을 함께 해야 한다.

재판과정을 함께 하며 그동안 쌓여있던 억울함과 분노 등을 모두 털어 내어 얽혀있던 실타래를 풀 수 있다면 재판 종결 이후 의뢰인의 미래에 새로운 실타래를 연결시켜 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변호사와 의뢰인의 관계를 정호승 시인의 방문객에 비유하곤 한다. 의뢰인이 변호사를 선택하는 순간, 의뢰인의 일생 즉 그의 과거, 현재와 그리고 미래가 함께 오는 것이다. 시인의 말처럼 한 사람의 일생이 온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러나 사건 하나를 맡은 변호사에게 의뢰인의 일생을 감당하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시인의 말처럼 분쟁으로 인하여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그 마음을 받아 줄 수는 있지 않을까. 나는 상황을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며, 보듬어 주는 그런 바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흉내 내려고 하는 변호사인지 내 마음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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