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3일자 조선일보는 “‘성폭행하려 줄 서…사람이 할 짓인가’ 분노한 항소심 판사, 형량 올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서울고등법원 H모 부장판사는 소위 도봉 여중생사건 선고공판에서 주범 2명에게는 각 징역 7년을 선고하고, 공범 2명에게는 각 징역 6년을 선고하여 주범 1명을 제외한 나머지 3명에게는 1심 보다 형량을 1년씩 올려 선고하고, 또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공범에게는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고 보도했다.

필자는 먼저 이 판결에 대해 재판부가 선고형을 결정하기까지 겪었을 고뇌와 번민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고 싶다. 항소심에서 형을 올리는 것은 이례적인 일인데다가 피고인들은 아직 장래가 구만리 같은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기에, 특히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피고인에 대해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을 하기까지는 더욱 극심한 고뇌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이러한 판결을 한 것은 그렇게 하는 것만이 죄와 형벌의 균형을 맞추는 것으로 사법정의의 실현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항소심 판사의 지난(至難)한 결단에도 불구하고 과연 항소심의 판결이 1심 판결보다 사법정의에 더 부합하는 것일까.

1심 판사 역시 최선을 다해 형량을 정했을 것이고, 더욱이 1심 판사는 관련 증인 등 사건 관련자를 직접 대면할 기회가 항소심 판사보다도 훨씬 많았을 것이기 때문에 1심 판사의 판단이 사법정의에 더 가까웠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항소심 판사들이 판사경력이 더 많다는 이유만으로 1심 판사들보다 더 정확한 판단을 한다고 보증할 수 있을까. 만약 확실한 보증이 없다면 항소심 판사는 오로지 자신의 소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판단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더 나아가 가사 항소심판결의 결론이 사법정의에 더 가깝다고 하더라도 이런 판결을 하는 것이 절차적으로 정당한 일일까. 특히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던 피고인이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 받음으로써, 그의 인생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의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할 것이다.

피고인의 인권을 중시하는 영·미의 형사소송절차에는 ‘이중위험금지의 원칙(prohibition against double jeopardy)’이라는 것이 있다.

피고인에 대해 1심 재판부에서 일단 판결을 선고하면, 검찰 측에서는 1심 판결보다 피고인에게 불리한 판결을 구할 목적으로 상소를 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따라서 이 원칙에 의하면 항소심에서는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할 기회가 없고, 심지어 1심의 무죄판결이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다시 유죄를 선고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게 되는 것이다.

왜 이런 원칙이 정립된 것일까. 피고인은 판사가 자신에게 내린 판결에 대해 강한 신뢰를 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신뢰를 깨는 것은 피고인에게 감내(堪耐)하기 어려운 더 큰 고통을 주는 것이기에 국가기관의 잘못(항소심에서 1심판결을 파기하고,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하는 것은 1심판결이 잘못된 것이라는 전제에서만 할 수 있는 판결이다) 때문에 피고인에게 더 큰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형사소송법은 영미법의 형사소송원리를 대부분 수용하면서도 유독 이 원칙만은 채택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원칙을 채택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 항소심 재판에서는 사실상 이 원칙과는 정반대되는 이익변경금지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대법원에서는 1심 판결의 존중이라는 미명하에 1심 판결에 대해 피고인이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항소심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감형을 하지 못하도록 지침을 내리고 있고, 실제 항소심 판사도 감형을 하는 데 있어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양형부당을 항소이유로 규정하고 있는 형사소송법 제361조의5 제15호에 위배되는 초법적인 조치일 뿐만 아니라 피고인의 인권을 위한 영미법의 이중위험금지의 원칙은 채택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항소심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형을 변경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이익변경금지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이 대법원이 1심 판결을 존중하도록 사실상 항소심 판사를 압박하면서 항소심 판사들이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1심판결을 변경하는 것을 무제한 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심각한 자가당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영장실질심사 등 형사소송절차에서 많은 인권 개선 조치가 취해 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중위험금지의 원칙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의조차 진행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앞으로 이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입법적으로 채택하기 전이라도 판사들은 항소심 재판을 함에 있어 선진 법원칙의 하나인 이중위험금지의 원칙을 염두에 두고 재판을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고, 특히 대법원의 지침인 이익변경금지의 원칙(?)을 준수하는 판사들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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