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저의(底意)가 있다.’

검찰과 법원이 충돌하면서 서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국정원 민간인 댓글팀 관련자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채용비리 관련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한꺼번에 기각된 것이 발단이었다. 검찰은 “법과 원칙 외에 또 다른 요소가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법원은 “향후 다른 사건에 영향을 미치려는 저의가 포함된 것 같다”고 반박했다. 서로 상대방의 ‘저의’를 의심했다. 과연 상대방의 ‘저의’는 무엇일까. 그 속마음을 들어보자. 물론 이것은 사실에 바탕을 둔 가상이다.

판사가 영장을 기각하다니 말이 돼? 서울중앙지법에 새롭게 배치된 영장 전담 판사들의 판단 기준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이건 말이야. 국정 농단 사건, 적폐 청산 사건이야. 중요 사건이기 때문에 영장은 무조건 발부돼야 해. 국민은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원하고 있어. 판사가 국민 이익과 사회 정의를 고려하지 않아. 시의성이 없는 거야. 법과 원칙 사이에 또 다른 요소가 작용한 것 같아. 무언가 저의가 있어. 판사가 정치적 판단을 하고 있는 거야. 사법부 내부에 이상한 흐름이 느껴져. 이번에 좀 세게 반박문을 내야겠어. 법원에 불만을 표시해서 여론을 환기시켜야 해. 여당도 힘을 보태줄 거야. 국민도 응원해 주겠지. 이렇게 십자포화를 쏘면 수사의 동력을 충전하는 효과도 생기는 것이지.

영장 전담 판사가 바뀌어 결과가 달라졌다는 것은 억측에 불과해. 아직도 구속이 수사 성공이라는 관행에서 검찰이 벗어나지 못한 거야. 영장은 처벌이 아니라 수사의 편의를 위한 거야. 구속 사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개별 사안에서 도망이나 증거인멸 우려 여부야. 그것이 인정되지 않으면 영장을 기각하는 게 맞아. 구속 영장은 신체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해. 따라서 사안의 개별성을 따져봐야 돼. 하지만 검사는 시의성을 앞세우지. 아무리 사안이 가벼워도 중요 사건이고 수사 필요성이 있으니 영장을 발부해 달라고 주장해. 검찰이 생각하는 중요사건은 권력 편향적인 요소가 많아. 살아있는 권력에서 관심을 갖거나 하명 수사를 지휘한 사건이지. 무언가 저의가 있어. 앞으로 적폐청산, 국정농단 사건은 앞뒤 보지 말고 영장을 발부하라는 무언의 압력이지. 여당까지 가세한 걸 보면 영장을 기각하면 판사도 적폐로 보겠다는 것이지.

영장 기각에 대해 검사와 판사가 부딪히는 이유는 검사가 직접 수사하기 때문이야. 특수수사는 검사가 직접 수사하고 기소하고 재판까지 담당하잖아. 자신의 사건에 감정을 이입시키는 경우가 있어. 자신의 사건에 오류가 없다는 확신을 가질수록 수사와 재판에서 거칠어져. 실체적 정의를 위해서 가끔 절차적 정의를 외면하기도 하지. 그럴수록 오만과 독선이 자꾸 보여. 그것이 지나치면 우려를 넘어 두려움을 느낄 때도 있어. 그래서 긴 안목으로 특수 수사의 총량을 줄여야 해. 법원이나 검찰의 지붕 아래서 생활하면 자신을 잘 몰라.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으면 자신의 냄새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아. 하지만 바로 옆 화장실 냄새에 금방 얼굴을 찌푸리지. 그런데 당신은 아마 모를 거야. 바로 옆 사람도 당신 냄새에 코를 막았다는 것을. 누군가 말했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은 바로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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