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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개정 이후 중재법 VS 뉴욕협약
최종화 변호사  |  pjhc03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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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6호] 승인 2017.09.18  10: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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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출근 해보니 대표님께서 책상 위에 기록 한 무더기와 함께 짧은 메모 하나를 남겨 두셨습니다.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니 전 과정을 머릿속에 새길 것’ 내용을 보니 신청인은 피신청인의 정기용선계약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에 대해 영국에서 중재판정을 받았고, 이를 근거로 우리나라 법원에 피신청인의 국내 보유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 허가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일견 형식적인 요건을 충족시키기만 한다면 특별한 쟁점이 없는 것으로 보였기에 처음에는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외국판결의 국내 집행은 수도 없이 경험한 바 있으며 중재의 경우도 대동소이하여 별다른 어려움 없이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 건은 2016년 5월 29일 개정되어 2016년 11월 30일부터 시행된 중재법과 뉴욕협약(Convention on the Recognition and Enforcement of Foreign Arbital Award, 1958)의 동시 적용에 따른 문제점이 최초로 수면 위로 오른, 선례로서의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너무도 간단해 보이는 이 사건은 벌써 수 개월째 법원에 계류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뉴욕협약은 외국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하여 UN 주도하에 체결된 다자간 국제조약입니다. 제출 서류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규정 4(Article Ⅳ)를 보면, “‘정당하게 인증된 중재판정 원본 또는 정당하게 증명된 그 등본(The duly authenticated original award or a duly certified copy thereof)’과 중재판정이 원용될 국가의 공용어로 작성되어 있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 문서의 공용어 번역문’을 제출해야 하며, 이 때 번역문은 공증인 또는 선서한 번역관, 외교관 또는 영사관에 의하여 증명되어야 한다(The translation shall be certified by an official or sworn translator or by a diplomatic or consular agent)”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한편, 우리나라의 중재법은 개정 전에는 뉴욕협약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차용하여 ‘중재판정의 정본 또는 정당하게 인증된 그 등본’과 ‘정당하게 인증된 한국어 번역문’을 첨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후 개정 과정에서 ‘중재판정의 정본이나 사본’ 그리고 중재판정이 외국어로 되어 있는 경우에는 ‘한국어 번역문’을 구비하도록 하였으며 ‘정당하게 인증된’이라는 요건을 모두 삭제하였습니다. 이는 중재판정이 보다 신속하게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당사자의 편의를 증진시키고자 하는 개정 취지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얼핏 뉴욕협약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전부 제출해 충분조건을 만족시켜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국내에 공적 번역관 제도가 없는 점, 현지 영사에 의한 확인 절차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는 분쟁 해결의 신속화, 간결화라는 중재 제도의 창설 취지에 오히려 역행하는 절차들을 수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통설과 다수의 판례가 (국회의 동의를 요하는)조약과 국내법의 동등한 효력을 인정하고 있기에 위상의 우위에 따른 판단은 어려울 것으로 보이나, 개정 중재법이 뉴욕협약과 비교했을 때 신법의 지위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한편 2006년 개정된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모델중재법은 뉴욕협약 제 4조와 거의 동일한 제35조 제2항에 대한 각주에서, ‘본 항에 명시된 조건은 최대 기준을 정하기 위함이며 국가가 부담이 되는 조건을 더 적게 도입하는 경우 본 모델법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조화의 수준에 반하지 아니할 것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중재판정 결과의 현출과 같은 필수적인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요건에 대해서는 국내 입법을 통해 간소화 하는 것이 허용됨을 천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각국은 뉴욕협약의 기본적인 큰 틀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완화된 기준을 새로이 설정할 수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에 따라 개정법이 인증절차를 요구하지 않고 중재판정의 사본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이미 적법한 절차에 따라 도출된 결과를 증명하기 위해 또 다른 번잡스런 절차가 진행되는 것을 최소화 하기 위한 결단으로 보입니다. 나아가 번역문에 대한 일체의 인증이나 검증을 배제시킨 것은, 이것이 재판부의 편의를 위해 제공되는 것일 뿐 중재판정 사본 등과 별도로 중재판정의 존재를 소명하는 실질적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개정된 중재법에 따라 외국에서의 적법한 중재판정이 실재함을 증명하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중재판정 사본,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한 번역문)이 충족이 되는 경우라면 신청인의 강제집행을 허하는 결정이 신속히 내려져야 할 것이나, 법원은 뉴욕협약과의 관계를 고려하며 장고에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합리적이고 신속한 절차에 따른 중재판정의 집행·승인은 외국과의 상호주의의 측면에서나, ADR의 활성화를 위한 측면에서나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미명하에 외국의 법이나 조약을 우직하게 준수하는 것에 천착할 것이 아니라, 중재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큰 만족을 선사할 수 있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의 구현에 대해 유동적인 자세로 고민하고 개선해 나아가는 것을 지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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