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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통신]이름 붙인다는 것의 무거움
강금아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8기  |  ibsnowi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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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5호] 승인 2017.09.11  11: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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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시는 해석하기 나름이라지만 김춘수 시인의 ‘꽃’은 나에게 ‘명명(命名)하는 것’의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시였다. 내가 이름을 붙이기 전에는 그 존재조차 알 수 없던 하나의 몸짓이 내가 이름을 붙임으로써 ‘어떤 의미’로 와 닿는 것만큼 낭만적인 것이 또 있을까. 그래서 나는 그 어떤 대상에도 감히 함부로 이름 붙이지 않는다. 그것은 내 세계로 와서 하나의 의미로 자리 잡는다는 의미니까.

요즘 들어 공부를 하면서 좋지 않은 버릇이 하나 생겼다.

수많은 판례를 접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쉽게 떠올리고 빠르게 암기하기 위해 판례를 간단히 줄여서 ‘OOO사건’이라고 부르는 점이다. 물론, 스스로 이름 붙이기보다는 암기를 위해 최적화된 수험서 등에 의해 명명된 것이 대부분이다. 간단하게 기억하려는 습관자체가 나쁜 것은 전혀 아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건이 피해자에 초점을 맞춰 명명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드는 것만으로도 2차 가해가 될 것 같아 구체적으로 열거할 수는 없지만 사건의 피해자에 초점이 맞춰진 사건명은 문제의 프레임을 가해사건의 정황과 문제점, 혹은 가해자 자체에 맞추기 보다는 오로지 피해자에만 집중시키기 마련이다. 대부분 언론 보도과정에서 출발한 이와 같은 명명은 가해사건이 어떻게 발생하였고,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결론에 이르러 어떤 판결을 받게 되었는지 보다 피해자가 어떤 상황이고 그와 같은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하여 어떤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등을 더욱 조명한다. 이 과정에서 법적 판단과 결론은 배제되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만 남기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피해자의 신변보호가 최우선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형사사건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분쟁 혹은 사건 해결의 과정에서 의뢰인의 비밀을 보호하고 2차 가해로부터 그의 신변을 보호하는 것이 법조인으로서 함양해야 할 자세임은 틀림없다. 그 자세를 갖추어야 할 예비법조인으로서 오로지 기억하기 쉽다는 편의만으로 피해자에 초점을 맞춘 명명을 아무렇지 않게 답습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피해자가 피해자로 이름 붙여지는 것, 그 가혹한 사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피해자를 지칭하는 사건명을 지양하는 사고와 태도가 자리 잡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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