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를 작성하려는데 “법원 ‘원세훈, 국정원법·선거법 위반 공모 공동정범(속보)’”이라는 타이틀로 속보가 떴다. 대법원에서는 일부 증거의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취지로 원심을 파기환송하였는데, 파기환송심에서는 원심보다 더 많은 혐의를 인정하면서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보다 중한 징역 4년을 선고하였다.

최근 정권이 바뀌고, 국가적으로 적폐청산·개혁·혁신·진보 등의 개념을 화두로 변화가 진행되는 것이 느껴지고 있다. 우리 법조인들은 위 사건에서 법원이 이전보다 중한 형을 선고한 이유를 증거와 법리공방의 변화일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나, 국민들은 정권이 변해서 비로소 진실이 밝혀진다고 느낄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는 국민학교 시절부터 판사가 되어 정의를 수호하겠다는 꿈을 꾸었고, 판사는 되지 못하였으나 우여곡절 끝에 변호사가 되었을 때, 지나온 삶의 과정에서 은혜를 입은 사람들과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서 스스로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접하는 사건의 수가 많아질수록 사회 자체가 구조적인 타성에 젖어 있는 면을 더 많이 보고 확인하게 되었고, 그만큼 법과 정의가 허울에 불과하다는 자괴감이 마음속에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다.

보통 사람들은 대개가 맡은 일의 양이 많아지면,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의 능력을 키우기보다 일에 끌려 다니면서 일이 줄어들기를 바라고, 유사한 일을 반복하면 실수를 조심하면서 실수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개선·수정하기보다 정해진 틀에 맞지 않음을 탓하며 틀에 맞추려고 한다.

그것이 매우 잘 나타나는 집단이 성과에 대한 보상이 없고, 현상의 유지에 큰 걱정이 없는 집단이다. 그 집단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관료제 조직인 공무원집단이다.

필자도 최근 들어 날이 더워져서 체력적으로 무리가 오자 만사가 귀찮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세세하게 신경쓰고자 하는 마음에 따라가지 못할만큼 일이 많기도 하고, 결과가 실망스럽기도 하고, 의뢰인이 피곤하게 만들기도 하는 탓에 조금 성에 차지 않더라도 일을 빨리 마무리 지을까 하는 유혹에 빠지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럴 수가 없다. 고용변호사인 탓에 고용의 유지를 위해서 다른 나태해질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지만 필자가 변호사가 되자마자 초심(初心)을 쓴 수건을 여러장 만들어서 사무실 탁자 아래 깔아 두고, 은혜를 입은 분들에게 드리며, 앞으로도 많은 조언을 달라고 청하였기에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자 하는 최소한의 자존심이 타성에 젖지 말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체의 병을 고치는 것이 의사라면 사회의 병은 누가 고치는가. 변호사, 법조인의 본분이란 타성에 젖은 사회에서 고통받는 사람을 돕고, 그로 인하여 타성에 젖은 사회에 경종을 울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정권 교체 이후 진행되는 여러 변화의 양상이 반갑다. 개인의 개성과 양심이 집단에 매몰되지 아니하는 사회, 오히려 개인의 발전을 이끌어주고 응원해주는 사회, 서로가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국민 모두가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고, 또 그 본분의 충실함 자체로 행복을 느끼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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