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변호사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일본 법원에서 1999년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을 시작했는데, 2008년 11월에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한일청구권협정을 이유로 청구기각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더 이상 일본에서는 이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하기 불가능해졌습니다.

근로정신대 문제를 우리나라에서 풀어내기 위해 광주 시민이 2009년경부터 광주광역시청 앞에 있는 미쓰비시 대리점에 앞에서 1인시위를 했습니다. 그때 저도 광주 민변 소속 변호사들과 함께 1인시위에 참여하게 되면서 근로정신대 할머니를 알게 되었습니다.

2012년 대법원이 일제징용피해자들에 대해 승소판결을 내렸습니다. 그 판결을 계기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 문제도 우리 법원에서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얻고 소송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광주 민변 소속 변호사 8명이 소송대리인단으로 참여했습니다.

 

미쓰비시 중공업에 대한 소송은 1, 2, 3차로 나누어 진행되고 있는데, 소송 경과에 대해 간략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전국적으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 문제, 일제징용피해 할아버지들 문제 총 16건의 소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광주에서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 문제로 소송 3건을 제기하였는데요, 1차 소송을 양금덕 할머니 등 다섯분이 2012년에 소송을 제기해 현재 대법원에서 계속 계류중에 있고, 광주 민변 소속 변호사 22명이 원고 소송대리인단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2차 소송은 2014년 2월에 양영수 할머니 등 네분이 제기한 소송인데, 지난 8월 11일에 1심 판결 선고가 있었습니다. 3차 소송은 2015년 5월 이경자 할머니 등 두분이 제기한 소송인데, 지난 8월 8일 1심 판결 선고가 있었습니다.

1944년 당시 할머니들은 13~14세였는데요, 일본 사람들이 일본에 가면 공부도 시켜주고 돈도 벌게 해주겠다고 속여 일본에 가게 됐습니다. 막상 가보니 공부는커녕 임금 한푼도 받지 못하고 온갖 가혹행위를 당하고 강제노역을 했습니다. 도난카이 대지진 때 공장에서 일하다가 현장에서 사망하거나 다치신 할머니도 많습니다. 또 귀국해서는 일본군 위안부라는 오해 속에서 한 맺힌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지난달 11일에 선고된 1심 판결도 2년 넘게 진행됐고, 관련 소송 역시 아직 대법원에 계류 중입니다. 소송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법원 사건은 법원의 판결의지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1차 소송인 양금덕 할머니 등 사건이 대법원에 접수된지 2년이 넘었습니다. 이 사건의 상고심 기간만 놓고 본다면 극히 이례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사건과 관련 있는 일본 징용피해자 사건이 2012년 파기 환송됐고, 고등법원에서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원고 승소판결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미쓰비시가 2013년 7월 다시 상고했습니다. 벌써 4년이 지났지요. 그리고 위 1차 소송도 그 사건과 같은 쟁점이라면 판결을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2차, 3차 소송은 피고 미쓰비시의 소송절차에 대한 협조가 부족하여 지연되었습니다. 피고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헤이그 조약에 의한 국제 송달을 해야 하는데 6개월 넘는 시간을 들여 송달을 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반송을 거듭했습니다. 그래서 2차 소송은 1심 선고까지 3년 6개월 정도가 걸렸습니다.

 

소송이 길어질수록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고통도 심하고, 피해자들이 고령인 점도 문제될 것 같습니다.

할머니들은 90세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언제까지 시간이 기다려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지요. 이 사건 소송 목적이 할머니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주는 것에 있는데, 자칫 목적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징용피해 원고 중 소송의 끝을 보지 못하시고 돌아가신 분들이 많습니다.

대법원이 판결을 주저하는 사이에 한일 양국 간 외교관계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판결을 늦춘다고 한일 관계가 개선되지는 않습니다. 한일 양국 간의 외교문제를 정리한다는 의미에서도 대법원의 조속한 판결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에 종합적 책임을 묻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첫 걸음은 대법원이 조속히 판결을 선고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급심 판결도 혼선 없이 정리될 수 있습니다.

소송과 별개로 정부는 일본과 미쓰비시중공업에 사죄와 배상을 당당히 요구해야 합니다. 대법원이 정부에게 더 이상 한일청구권협정에 묶이지 않도록 법리를 제공해줬으니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징용피해자 및 근로정신대 피해자들 중 소송을 제기한 분은 극소수입니다.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분들까지 모두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국회는 입법적인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광주회 소속 변호사들은 시국사건부터 시민 인권 관련 소송 등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활동 소개 부탁드립니다.

최근 광주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활동은 5·18 민주화운동 왜곡 사건에 대한 대응입니다. 지만원과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명 ‘일베’)가 5·18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것에 대하여 형사고소, 가처분 및 손해배상소송을 하였고, 최근에 1심에서 승소하였습니다. 또 전두환 회고록에 대해 가처분을 하여 그 출판을 금지시키는 성과도 거뒀습니다.

그 외에도 광주의 여러 변호사들이 뜻을 모아 신안 염전노예 사건, 담양 펜션 화재사건, 장성 요양원 화재사건, 도가니 사건, 대형마트 주말 휴업에 대한 행정소송, 남영전구 수은유출 사건,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카드회사 개인정보유출 사건 등 공익 사건 다수를 진행해 왔습니다.

 

인권 관련 소송에 참여하고자 하는 청년변호사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저도 아직 답을 알지 못하지만 지금까지 정리한 생각을 전해드리자면, 관심 있는 사건이 있는데 할까 말까 망설이게 된다면 늘 초심으로 돌아가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 로스쿨을 입학할 때, 나는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었는지를 더듬어 보면 선택할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변호사 초기에 어떤 선배 변호사님께서 판사(判事)와 검사(檢事)는 ‘事’를 쓰는데, 변호사(辯護士)는 ‘士’를 쓰는 이유를 물으셨습니다. 그때는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저의 결론은 ‘판사와 검사’는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하는 것이 그 사명입니다. 반면 변호사는 선비, 즉 자유로운 지성인입니다. ‘주어지지 않았지만’ ‘하고 싶은 일’ ‘해야 되는 일’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것이 ‘사(士)’에 담긴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인생은 B와 D사이의 C이다.” 샤르트르의 말인데요. 인생은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HOICE)이라는 것이지요. 변호사의 ‘사(士)’는 이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소양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바라는 점은?

대한변호사협회는 재야 변호사들의 단체입니다. 시대의 협력자이기보다는 비판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했으면 합니다.

또한 근로정신대 문제 등 대일항쟁기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 문제에 많은 관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요 약력

▶사법시험 48회, 연수원 38기

▶광주고등검찰청 항고심사위원

▶광주경찰청 수사이의심사위원

▶대법원 행정처장 ‘감사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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