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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초심을 잃지 않게 해 주는 의뢰인
송영숙 변호사  |  yss@jeongy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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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3호] 승인 2017.08.28  10:5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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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님, 내일 찾아뵈려는 데 언제 시간 가능하세요?” “네. 10시에 오세요.”

1년에 두번 명절 연휴 전주면 어김없이 오는 문자다. 지인 소개로 2003년 2월 막 3년차 변호사였던 나를 찾아 온 의뢰인이다.

그는 아버님이 모 재건축조합의 조합장인데 재판받다가 법정구속되었다고 했다.

공갈, 뇌물, 업무상횡령 등 죄명이 6개였고, 판결문도 제법 길었다. 당시 나는 회사 자문업무를 많이 하는 사무실에서 소속변호사로 근무 중이라 형사사건 경험이 일천하였다. 함께 온 지인의 얼굴을 봐서 바로 못한다는 말도 못하고 주말에 기록을 검토한 후 항소심에서 번복될 가능성이 있는 지 여부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기록을 받아 보니 수천 페이지에 달했다. 일별해보니 재건축조합과 비상대책위원회 간의 분쟁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등장인물도 많았고, 어떤 죄명은 증인만 10명이었다.

새로운 물증이나 증인이 없는 한 원심 판결을 뒤집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항소심에서 결과가 달라지긴 어려운 사건인 것 같다고 하였다. 방문자는 아버님이 법정구속 되자, 변호사 사무장이라며 연락이 오기도 하고, 주변에서 변호사 소개해 주겠다고 하여 30여곳 변호사 사무실을 다녀왔는데, 변호사를 직접 만난 것도 기록 검토 후 선임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말을 들은 것도 처음이라면서 항소심에서 어떤 결과가 나와도 좋으니 맡아 주기만 해 달라고 사정을 하여 수임하였다.

단시간에 전체 구조를 파악하기 어려울 것 같아 피고인 아들(조합의 사무장으로 근무)에게 나를 설득하면 내가 재판부를 설득하겠다고 했다. 2~3일 후 피고인 아들은 죄명별로 A0사이즈 마분지에 관련자 전체 구조와 각 증인들의 주요 증언, 증언의 모순 등에 대해 정리해 왔다. 아버지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아들을 보고 이 정도면 정말 억울하고 그 억울함을 풀어 주어야 할 것 같아 기록과 대조해 가며 항소이유서를 작성하고 증거신청을 했다. 공판 첫 기일을 마치고 사무실에 도착하자 재판부에서 보석신청을 하라고 하였다. 피고인과 그 아들, 조합관계자 등을 만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1심 때 하지 않은 증거조사를 하면서 변론을 한 결과, 무죄판결이 나왔다. 피고인과 그 아들의 이야기를 경청하여 변론의 방향을 정한 후, 수개월 동안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무죄판결을 받은 경험은 이후 나에게 상당한 자신감을 주었다. 경험도 없는 나에게 사건을 맡겨 무죄판결을 받을 기회를 준 의뢰인에게 감사한다.

변호사는 사건을 수행하면서 전문가로 성장한다. 나는 변호사는 돈 받으면서 배우는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나에게 사건을 맡기는 의뢰인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의뢰인의 말을 경청하여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사건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피고인 아들은 사건이 종결된 후, 매년 명절이면 찾아와 안부를 묻고 감사의 말을 전하고 간다. ‘한두번 오다가 말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왔다. 그 친구가 왔다 가면, 나는 그동안 변호사로서 부끄럽지 않게 일을 했는지, 그 사건 만큼 의뢰인의 억울함을 잘 듣고 최선을 다해 변론을 하고 있는 지 되돌아보곤 한다. 이제는 피고인의 아들이 내가 변호사로서의 초심을 잃지 않게 해 주는 지표가 되어 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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