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해 보이는 그 자리가 실은 폭풍우 치는 바다의 한 가운데였습니다.”

지난 3월 퇴임한 이정미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퇴임사 중 한 구절이다. 대한민국 헌정사 최초의 현직 대통령 파면이라는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리기까지 거쳤던 수많은 고뇌가 ‘고요함 속의 폭풍우’라는 표현에 녹아들어가 있다.

지난해 늦가을, 대한민국에서 시작된 폭풍우는 매섭고 강했으며 우리 국민에게 많은 분노와 실망을 안겼다. 그 바람은 ‘광화문’ ‘여의도(국회)’를 지나 ‘삼청동(헌법재판소)’에 이어 ‘서초동(검찰과 법원)’까지 몰아치고 있다.

2016년 12월 19일 첫 재판 이후 8개월 가까이 재판을 받고 있는 국정농단 사태의 중심 최순실씨(61)의 수많은 혐의는, 그의 유무죄 여부를 떠나,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여기에 얽힌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정치인, 지식인, 기업인들이다. 그들이 가진 부와 명예와 권력과 지식이 옳지 못하게 활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우리를 참 많이 아프게 했다.

국민은 한 차례 지나간 폭풍우로 흙탕물이 뒤집어지고 맑은 물이 위로 떠오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지금까지 있었던 최씨와 박근혜 전 대통령(65),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 등 사건을 비롯해 ‘이대 비리’ ‘비선진료’ 재판들은 역사의 흐름 속 커다란 정련의 과정일 것이다.

아직 무엇이 진실이다 섣불리 판단하기 이르다. 수많은 재심 사건이 말해주듯, 진실은 수십년이 지나 그 빛을 드러낼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 우리는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 있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의 가치를 새삼 소중히 여기게 됐다.

국민은 수십년 동안 정련한 ‘법치주의 국가’로서의 자부심을 유혈사태 하나 없는 평화적인 집회의 자유를 통해 굳게 세웠다. 이제 그 자부심을 법으로 다시 지킬 때가 왔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역사가 할 것이다. 다만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폭풍우가 지나간 후 맑아진 물 속에 보이는 교훈을 찾기 위해 우리 국민이 쏟은 시간과 노력, 다툼, 외침을. 검찰의 수사와 기소, 공소유지, 변호인의 변론과 양측의 주장을 판가름하는 재판들은 국민 모두의 것이다.

국정농단 사건들의 1심 재판이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박 전 대통령의 주요 혐의와 연결된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 공여 사건 선고가 이달 중 난다.

폭풍우가 한바탕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수천만명의 눈과 귀가 서초동에 쏠려 있다. 이를 기록해야하는 언론인의 책무가 더욱 막중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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