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브리타니아 선주책임상호보험조합(Britannia P&I Club)을 통해 포르투갈에 소재한 P해운회사로부터 사건 의뢰가 왔습니다. P사가 울산에 있는 A사에 운항 관련 대금을 송금했는데 A사는 송금 받은 사실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주고 받은 이메일 일부가 자신들이 보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울산남부경찰서 사이버팀의 도움을 받아 파악한, 이른바 ‘이메일무역사기’ 사건의 전모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이지리아인으로 구성된 해커집단에 의해 A사의 컴퓨터에 악성코드가 심어졌고, 이후 해커들은 A사가 송·수신하는 이메일들을 보며 그 내용을 지득하였습니다. A사와 P사의 이메일에 대금 송금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고, 예정된 송금일이 다가오자 해커들은 마치 A사인 것처럼 가장하여 P사와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계좌를 송금계좌로 지정하였고, P사는 해커들의 계좌로 미화 약 2만2000달러를 송금하였습니다. 해커들은 기존 이메일과 동일한 서식을 사용하면서 알파벳 한 글자의 배열만 바꾼 다른 이메일 주소를 사용하였고, 보통 상대방이 메일을 보낼 때 주소를 새로 입력하지 않고 회신기능을 이용한다는 점을 노렸으며, 그 내용 또한 관계자들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전문적인 사항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P사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아가 해커들은 송금이 이루어진 후에도 2주 이상 계속 이메일을 보내 P사가 범행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없게 하였습니다.

P사가 사건 의뢰를 한 시점은 송금이 이루어지고 50일 이상 경과한 뒤였기에 저희는 당연히 해커들이 받은 돈을 전부 소비하였을 것으로 예상하였습니다. 그러나 영장에 의한 조회 결과 해커들의 은행계좌에 약 360만원 정도의 잔고가 있는 것이 확인되었고, 수사 진행과는 별도로 이를 P사에게 반환해 주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피의자로 지목된 나이지리아인이 지난 3월 이미 출국한 상태라 신병을 확보하기 어려워 기소중지가 예상되는 상황이기에, 배상명령신청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여 하릴없이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경찰에서는 이메일무역사기에 대해 ‘사기죄’를 적용하고 있으며,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이하 ‘전기통신법’) 위반’으로 구성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기통신법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범죄 유형을 포섭하고자 하는 취지를 반영하여 제정되었으며, 나아가 범죄 피해자의 신청에 의해 사기이용계좌의 지급정지는 물론 채권 소멸 절차를 거쳐 피해금을 환급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소 제기를 하지 않고도 신속하게 피해를 복구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에, 전형적인 보이스피싱 범죄에 국한시키지 않고 한시라도 빠른 계좌 동결 등의 조치가 필요한 이메일무역사기와 같은 신유형 범죄에도 확대 적용할 수 있다면 피해자 보호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전기통신법 제2조는 ‘전기통신을 이용하여 타인을 기망하는 방법으로 자금을 송금·이체하도록 하여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전기통신금융사기‘로, 전기통신기본법 제2조 제1호의 ‘유선·무선·광선 및 기타의 전자적 방식에 의하여 부호·문언·음향 또는 영상을 송신하거나 수신하는 것’을 ‘전기통신’으로 규정하고 있어 이메일을 수단으로 피해자를 기망하여 다른 송금계좌로 돈을 보내게 하는 이메일무역사기를 포섭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전기통신법 제15조의2는 전기통신금융사기를 목적으로 타인으로 하여금 컴퓨터 등 정보처리장치에 정보 또는 명령을 입력하게 하는 행위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정형이 형법의 사기죄와 비교 했을 때 큰 차이가 없는 것은 물론, 실제로 일반적인 보이스피싱 범죄와 이메일무역사기에서 이루어지는 ‘송금 또는 이체’의 양상에 차이가 없는 점을 고려하면 이메일무역사기에 본 처벌규정의 구성요건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메일무역사기가 전기통신법상의 구성요건에 해당되더라도, 그 외에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그 중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죄’의 적용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적용되는 죄명은 법정형 뿐만 아니라 나아가 소멸시효기간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메일무역사기의 피의자를 검거하는 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지난하며, 피해자 대부분이 제대로 된 컴퓨터 보안시스템을 갖추지 못할 정도로 영세한 업체들인 점을 감안하면 형량의 다과보다는 계좌 동결과 피해금의 빠른 환급에 방점을 두는 것이 보다 의미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범죄 피해자의 피해 수복 절차의 간소화, 신속화는 향후 법조계에서 많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 규정 완비까지의 도정에서 보호의 사각지대에 노출되는 피해자들을 위해서, 기존의 장치를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지속가능한 미봉책’에 대한 고려도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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