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협, 공탁법 일부개정법률안 마련해 입법추진 … 가해자에 사죄 표할 기회 제공
“피해자 개인정보 보호와 피고인의 피해 회복 노력을 조화롭게 반영할 수 있어야”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김현)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공탁법 개정을 위해 두 팔 걷고 나섰다.

형사공탁제도란 피해자와 가해자 간 합의가 원만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일정 금액을 법원에 납부해 피고인이 최소한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제도로, 공탁사실은 양형에 일부 참작된다. 단 공탁금을 맡겼더라도 피해자와 합의한 것으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변협이 ‘공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마련해 입법화에 힘을 쏟고 있다. 개정안은 가해자에게는 사죄를 표할 기회를 부여하고, 피해자는 자신의 개인정보를 노출하지 않고도 공탁금을 수령해 피해보전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 변협 관계자는 “현재 국회의원을 통한 입법 발의를 위해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개정안에는 형사사건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에 따라 관련 서류에 범죄 신고자의 인적사항이 기재되어 있지 않아 스스로 노력으로 피해자 인적사항을 알 수 없을 경우 해당 수사기관이나 수소법원, 사건번호, 사건명 등으로 피해자를 특정해 공탁할 수 있도록 했다.

공탁 방법과 절차, 공탁통지, 공탁물 출급·회수절차 등 그밖의 사항은 대법원규칙으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개정안 제5조의2 제6항은 ‘공탁통지를 받은 수사기관 등은 피공탁자에게 공탁 사실을 통지하고, 피공탁자에게 공탁금 수령 의사를 확인하여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공탁만으로 형량이 감경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했다.

변협은 “형사사건에서 피해자 사생활 보호 및 피해 회복과 피의자 내지 피고인 의 피해 회복 노력을 조화롭게 반영하기 위한 방법 즉,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유출하지 않으면서 공탁하는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역삼동에서 근무하는 A 변호사는 “현행 공탁법은 피고인이 금전적으로나마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제도를 통해 피해자가 입은 피해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차단하고 있다”며 “피해자 신원을 보호해 2차 피해를 방지하는 동시에 피고인에게 공탁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제도가 조속히 도입돼야 한다”고 호응했다.

현행법상 공탁은 대법원 규칙에 따라 피공탁자 인적사항을 기재하도록 하고 있어 피해자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보복범죄가 지속되어 왔다. 국가통계포털(KOSIS) ‘범죄 발생 및 검거 현황’에 따르면 2011년 122건이던 보복범죄는 2013년에는 235건으로 두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렇듯 보복범죄가 늘어나자 범죄신고 자체를 기피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에 김학용 국회의원은 지난 2013년 3월 신고자 인적사항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조서 등에 범죄신고자 인적사항을 기재하지 않도록 하는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고 2014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렇게 되자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합의를 원하지 않는 피해자가 자신의 개인정보를 알려주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피해자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피고인이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게 되었고, 사법기관조차 피해자인 범죄신고자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부산시 부민동 B 변호사는 “합의가 성립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공탁제도가 피해자 인적사항을 필수적으로 기재하도록 하고 피해자 의사에 따라 개인정보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공탁제도의 취지를 유명무실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현재도 피해자 개인정보를 확인하기 위한 방법은 존재한다. 가해자가 공탁 신청서를 작성하는데 있어 관련 정보가 부족할 때 법원이 내주는 ‘보정권고서’를 주민센터에 제출하면 주민센터는 ‘관계 법령에 따른 소송·비송사건·경매목적 수행상 필요할 때’ 본인이 아니라도 주민등록초본을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하는 주민등록법 제29조 제2항을 근거로 피해자의 주민등록초본을 발급해 준다.

이에 서초동 C 변호사는 “재판부 성향에 따라 보정권고서 발급 여부가 결정된다”며 “피해자 의사를 청취한 후 개인정보를 알려주거나 보정권고서 발급 여부를 결정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어 실질적으로 개인정보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이 개정된 이후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져 왔다. 대법원은 지난 2015년 피해자 개인정보 없이도 공탁을 할 수 있도록 규칙 개정을 시도했으나 ‘법률개정사항’이라는 비판과 법무부와의 마찰 끝에 실패로 돌아갔다.

19대 국회 당시, 우윤근 국회의원도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으나 회기 말에 발의돼 끝내 의결되지 못하고 자동폐기됐다.

당시 우윤근 의원은 발의안에 대해 “가해자가 피해보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객관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됐다”며 “피해자 입장에서는 합의를 원해도 알려주기 꺼림칙한 개인정보를 공개하지 않고도 피해보전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자는 것”이라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피해자 개인정보 없이도 공탁이 가능하도록 공탁법이 개정되면 피고인이 피해자와의 합의 노력 없이 형을 낮추기 위해 공탁을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있다. 조선대 의전원 데이트 폭력 사건과 ‘땅콩회항’ 사건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같은 우려에 대해 우윤근 의원은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다면 공탁을 수령하지 않을 것이고, 판사가 양형 결정 시 이를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협 또한 “개정안에 수사기관 등이 피공탁자에게 공탁금 수령 의사를 확인하도록 한 이유도 위와 같은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이다”라고 설명했다.

김현 변협 협회장은 “개정 이후에도 공탁제도가 공탁법 개정 취지에 맞게 정상적으로 운영되도록 변협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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