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하면서 왜 노래를 불러요?” 지인들과의 저녁 자리였다. 의사 한분이 막 자신의 음악 취향에 대해 얘기를 풀어놓던 참이다. 요는 수술실 스태프들이 자신만 빼고 당시 화제가 됐던 댄스가스 A의 노래를 좋아해, 매일 같은 곡을 반복해 들어 괴롭다는 내용이다. 우스갯소리로 꺼낸 얘기다. 하지만 웃는 사람은 없었다. 되레 쓴 소리 하는 사람은 있었다. 수술 중 노래를 따라 불렀다거나 장난을 주고 받았다는 대목이 썩 유쾌하지 않았던 탓이다. 전체 이야기에는 여기서 밝히지 않은 몇 가지 언행이 더 있었다.
얘기를 건네 들은 의료인들은 대체로 이해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루에도 몇건씩 같은 수술을 하고, 길게는 한나절씩 같은 공간에 매여 있는 상황을 설명했다. 마치 운전할 때처럼 노래를 듣고 부를 수 있고, 동료들끼리 가벼운 농이나 장난을 주고받을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시체 해부실습 중 빵을 뜯어 먹었다는 일화처럼 이른바 ‘선수’들 사이에선 흘려버릴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뺀 나머지 사람들의 생각은 다른 듯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분노하기도 했다. 수술대는 생사가 갈리는 공간이다. 만약 자신이나 가족이 수술을 받을 때 일어난 일이라면 용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 전문가 집단과 일반인의 시각차가 커 보였다.
“왜 판사가 검사랑 회식을 해요?” 법조계에서도 비슷한 시각차를 봤다. 판사가 회식에서 검사를 추행한 일과 관련해서다. 논란이 됐던 일이다. 법조계 성추문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판사가 검사를 상대로 한 추행이 알려진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의 관심은 ‘성추행‘에 있지 않았다. 판사가 검사와 왜 회식을 했느냐에 있었다. 여러개의 관련 기사에 달린 수천개의 거친 댓글이 이를 물었다.
피고인 입장에서 법원은 운명이 갈리는 수술대 같은 공간이다. 혹 수사가 잘못됐거나,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했더라도 법원에서 바로잡아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법정에 선 판사와 검사가 실은 회식도 함께 하는 매우 가까운 사이라고 하니, 재판에 영향은 없는지 우려도 되는 것이다. 일반인의 시각이다.
판사와 공판검사가 종종 회식을 한다는 얘기는 들어 알고 있었다. 통상 6개월 수시로 얼굴을 마주하는 사이다. 일반 회사라면 함께 일하는 협력사 직원과 회식을 하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법관이었던 지인 A의 생각이 그랬다.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문제될 것 없다”고 했다. 검사 B는 “매일 보는 사이에 사심 없이 던지는 회식 제안을 거절하는 게 더 어색하지 않느냐”고 했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다만 판결문은 법조인의 시각에서 쓰지만 기사는 일반인의 시각에서 쓴다. 역사라는 이름으로 묶어 부르는 기타 등등의 것들도 대개는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