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로열버크데일 골프클럽에서 열린 2017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미국의 조던 스피스가 우승을 차지했다. 디 오픈 챔피언십은 세계 최초의 대회로서 이 대회가 열리는 영국에서는 유일의 오픈 대회라는 뜻으로 ‘디 오픈’이란 명칭을 고집하고 있다. 재작년 마스터스와 US오픈을 연달아 제패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스피스는 3라운드를 3타차 단독 선두로 마쳐, 무난한 우승이 예상됐으나 마지막 라운드가 시작되자 급격히 흔들렸고, 급기야 13번홀에서는 드라이버샷이 크게 휘어 플레이가 불가능한 곳에 공이 놓이게 되었다.

골프는 영국과 미국에 의하여 공식 규칙이 제·개정되어 왔는데, 규칙서의 방대함은 법전에 비견될 만하다. 규칙에 따르면 플레이가 불가능하여 선수가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한 경우 1벌타를 받고, 친 곳으로 돌아가거나, 2클럽 길이에 공을 드롭하거나, 아니면 홀과 공의 직후방 선상에 드롭할 수 있다(규칙 28).

스피스는 직후방 선상에 드롭하는 것을 선택했다. 당시 직후방 선상은 경기장을 완전히 벗어나는 곳이었지만, 스피스는 평평한 지역을 찾아 걸어갔다. 그곳에는 대형 광고 차량들이 세워져 있었지만 스피스는 그 차량들 사이에 드롭했다.

스피스는 다시 규칙을 적용했다. 규칙 24-2에 따르면 고정 장해물이 선수의 스윙을 방해하는 경우 벌타 없이 1클럽 길이에 드롭 할 수 있으나 이를 적용하더라도 대형 차량을 넘겨 홀을 공략하는 것은 역시 불가능했다. 스피스는 대신 생소했던 TIO(Temporary Immovable Obstructions)규칙을 꺼내들었다. 찾아보니 부칙으로 정해진 TIO규칙은 임시로 설치한 천막, 관람석, 카메라타워 등이 홀과 공 사이를 연결한 직선상에 걸리는 경우 이를 피하는 곳에 드롭할 수 있도록 하여 넓은 구제를 인정하고 있었다.

언플레이어블 규칙과 TIO규칙을 활용한 스피스는 최선의 환경에서 샷을 할 수 있었고, 최악의 상황을 보기로 막았다. 흥분된 상황에서도 규칙을 정확히 알고 활용한 것이다. 이후 스피스는 달라졌다. 14번홀에서 홀인원이 될 뻔하며 버디를 잡았고, 15번홀에서는 15m 이글 퍼트를 넣었으며, 16, 17번홀 버디를 연달아 성공해 마침내 디 오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스피스의 환상적인 플레이 못지않게, 규칙의 정확한 이해와 냉정하고 창의적인 활용이야말로 이번 우승의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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