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 협회장 역점사업, ‘민사소송 등 인지법 일부개정법률안’ 마련해 입법활동
“미국은 20만원~50만원으로 고액 소송 가능해” … 합리적 인지대 마련 노력

변협이 인지대 감액으로 국민 재판청구권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나섰다.

인지액은 사적 분쟁 해결을 위해 소송제도를 이용하는 국민이 부담해야 할 사법수수료다. 현행 민사소송 등 인지법 제2조 내지 제3조(상단 표 참고)에 따르면, 소송가액이 증가함에 따라 인지대 역시 늘어난다. 소가가 1000만원인 경우 1심 인지대는 5만원인 반면, 10억원인 경우 1심 인지대는 405만5000원이 된다. 인지대 상한은 없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김현)는 과도한 인지대가 헌법적 권리인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를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현 협회장은 협회장 당선 이전부터 인지대 정액제나 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당선 이후에는 이를 변협 역점 사업으로 계속 추진해왔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시절에는 “대법원이 사건 심리도 하지 않으면서 인지대를 많이 받으면 안 된다”며 대법원 심리불속행 판결에 대한 인지대 절반을 환급받는 내용이 담긴 법안 입법을 이뤄내기도 했다.

변협이 마련한 ‘민사소송 등 인지법 일부개정법률안(상단 표 참고)’은 인지대 상한을 정하고 인지대를 감액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과도한 인지대를 현실화하고 인지대 상한을 정해 국민이 느낄 수 있는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강일원서기석 헌재 재판관은 ‘민사소송 등 인지법 제1조 위헌소원(헌법재판소 2015. 6. 25. 2014헌바61 결정)’에서 “소송비용이 실질적으로는 소송물 가액보다 소송의 내용에 따라 결정되며, 국가가 개별 사건에 투입하는 비용 및 남소 방지라는 입법취지를 고려하여 적정 금액의 인지액 상한을 정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면서 “소장에 첩부하여야 할 인지액의 상한을 정하지 아니한 것은 재판청구권을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된다”고 반대의견을 밝힌바 있다.

과도한 인지대는 국민이 재판받을 권리를 행사하지 못 하게 막는 결과를 낳고 있다. 올해 초 민사소액소송을 준비했던 A씨는 “소송가액이 크지 않았는데도 인지대가 부담이 됐다”면서 “소가에 따라 인지대가 달라지니 소가가 클수록 부담이 더 클 것 같다”고 전했다.

고액 사건인 경우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변협은 지난달 26일 보도자료에서 “소가가 큰 소송은 인지대만 수억원 또는 수십억원이어서 원고들이 인지대를 준비하지 못해 소송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공익소송을 맡았던 B 변호사는 “변론은 무료로 하더라도 인지대는 보통 공익소송 당사자가 내는데 경제적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때문에 종종 변호사가 인지대를 대신 내기도 하는데 높은 인지대 때문에 소가를 줄여서 사건을 진행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C 변호사는 “다양한 쟁점이 있는 사건이었는데도 인지대 부담때문에 그 중 승소 가능성이 높은 부분만 골라서 소를 제기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동일하거나 유사한 사건인데도 당사자 중 일부가 소송을 제기하지 못해 권리구제를 받지 못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동일한 사안이어도 당사자 수에 따라 인지대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송영섭 변호사는 지난 2015년 개최된 ‘인지제도와 재판청구권’ 토론회에서 “동일사자 수에 따라 재판 업무량과 시간이 달라지지 않는데도, 당사자 수를 기준으로 인지대를 납부하게 하는 현행 기준은 옳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현 협회장은 경제적 부담때문에 소송을 하지 못 하는 국민을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지지하는 변호사교수 모임’을 통해 경제적 부담을 나눠서 질 수 있는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마련하기도 했으며, 협회장 취임 후에는 ‘포괄적 집단소송법안’을 입법 추진하기도 했다.

“심급별 인지대, 1심과 같이 통일 … 향후에는 인지대 정액제 도입해야”

또 심급에 따라 인지대를 달리 하는 현행기준에도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변협이 지난 2015년 전국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변호사보수 소송비용 산입 및 인지대 관련 설문조사’ 결과, 변호사 58%가 “심급과 상관없이 인지대 계산방식을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응답했다.

변협은 “특히 심급이 달라진다고 해서 더 많은 시간과 인력이 투입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경제적 부담을 배로 가중시키는 것은 고액 인지대를 부담하기 어려운 국민이 상소를 포기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고 비판하고, 이번에 마련한 법안에는심급별 인지대 차등을 없애도록 했다.

변협은 이번에 마련한 ‘민사소송 등 인지법’ 개정을 통해 인지대 상한을 정하는 동시에, 추가 연구를 진행해 인지대 정액제를 도입함으로써 국민 부담을 경감시키는 데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소송 천국으로 알려진 미국은 인지대가 우리나라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김현 협회장은 “우리나라 인지대는 소가에 비해 불필요하게 높은 상황”이라면서 “미국에서는 20만원 내지 50만원으로도 소가가 큰 소송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각 법원별로 정해진 금액에 따라 정액화된 사건접수비를 납부한다. 또한 인지대 상한선이 455달러로 정해져 있어 그 이상 수수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미국 연방대법원(U.S. Supreme Court)의 경우에는 상고이유서 신청 사건 접수 수수료 300달러를 납부하면 된다. 판결에 대한 재심리 신청이나 재심리 신청 허가 신청 수수료는 200달러다.

또 미국 지방법원(District Courts)에서는 민사소송 접수 시 인지대 350달러와 행정처리비용 50달러를 납부해야 한다. 다만 판결요약이나 기록복사 수수료 등은 전국법관회의에서 정한 금액으로 내야 한다.

주법원은 소송비용을 별도로 정할 수 있으나 금액대는 상위법원과 유사하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각 카운티(county)별로 소송비용을 통일했다. 소가 2만 5000달러를 초과하는 민사사건에 대한 접수비용은 355달러이며, 소가 1만 달러를 초과하고 2만 5000달러 이하인 사건은 330달러, 소가가 1만 달러 이하는 205달러다. 소가 1500달러 이하인 소액 사건은 30달러만으로 소장 접수가 가능하다.

뉴욕주법원은 사건에 대한 사건번호 부여는 210달러, 신청 시 납부 금액은 95달러, 재판기일 지정신청은 30달러다.

변협은 지난 5월 사업위원회 산하에 인지대감액추진소위원회위원회를 구성해 적정 인지대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

또 내달 18일 오후 2시에는 대한변협회관 14층 대강당에서 ‘인지대 감액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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