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흔적이 고랑처럼 패인 얼굴에는 씁쓸함이 먼저 걸렸다. 판결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을 삶의 궤적은 다시 법정에서 제 자리로 돌아왔다. ‘필화’ 사건으로 유죄선고를 받아 9개월간 수감생활을 했던 한승헌 변호사의 이야기다.

권위주의 시절 시국사건 변호를 맡아 ‘국내 1호 인권변호사’로 불리는 그는 8년간 변호사 자격마저 박탈당했다. 43년만에 이뤄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한 변호사는 “기쁜 마음보다 착잡하고 애처로움을 앞두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고랑을 다시 이랑으로 바꿔 놓은 판단은 이번에도 법원에서 이뤄졌다. 한 변호사는 그나마 나은 축에 속했다. ‘김제 가족 간첩단 사건’에서 조카는 검찰조사를 받던 중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고, 삼촌은 사형당했다.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던 다른 조카는 9년 후 석방됐다가 4개월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법원은 이들에게 34년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고문에 의해 작성된 조서는 간첩활동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재판부는 “국가가 범한 과오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지만 피해자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최근 재심사건이 유난히 많았다. 법에 따른 판단을 내리는 곳에서 법의 잘못을 인정한 셈이다. 법조차도 시대와 입법자의 의도에 따라 생명력을 달리하다보니 같은 행위가 합법과 위법의 경계를 넘나들게 됐다.

스스로가 법학 교수이면서도 ‘저주받으리라, 법률가여’란 섬찟한 제목으로 사법체계를 비판한 프레드 로델은 저서에서 “법은 구태의연을 그 덕으로 삼는다”고 일갈했다. 법 자체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그 문장만을 기계적으로 따지고 선례만을 따르다보니 ‘합법적’의 의미는 정의나 일반칙이 아닌 이전에 존재한 법에 따라 정해진다는 비판이다. 시대에 맞지 않거나 근본부터 잘못된 법이 손질되기 전까지 구태와 부당함이 합법이란 이름 아래 행해지게 되는데, 여기서 마지막 보루는 역설적이게도 그 법의 수호자인 법관뿐이다. ‘법과 양심에 따라 심판한다’. 법만이 아닌 판관의 양심을 판결의 규준으로 함께 둔 이유일테다.

‘김제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당한 최을호씨의 아들이 숨진채 발견됐다. 아버지의 무덤에 무죄가 적힌 재심 판결문을 올린지 사흘만이었다. 34년 전 법원이 법이 아닌 양심을 생각했더라면 불행한 재심도 없었을 것이다. 시대는 견고해보이지만 작은 용기는 조금씩 균열을 만든다. 양심이 하나의 판례가 돼 다른 용기의 설 자리를 만들어주고 그렇게 합법이 ‘정의’의 닮은꼴이 돼 가는 시대를 기대해본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시각까지 수많은 기자들이 자리를 지키며, 몇천건씩 이뤄지는 재판을 뒤적이는 이유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