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새내기 변호사들과 하하호호 웃으며 즐거운 식사시간을 가졌다. 그들은 로스쿨을 갓 졸업한 햇병아리 변호사들과 변호사의 맛을 한창 알아가는 3년차 변호사이다. 이름하여 나는 멘토, 그들은 멘티. 지난 5월 31일 선배 여성변호사와 새내기 여성변호사들을 멘토-멘티로 매칭하는 행사가 있었고, 그날 우리는 멘토와 멘티들로 만나 담소를 나누었지만, 못 다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으러 다시 만난 것이다. 모름지기 한끼 밥을 같이 먹어야 정이 도타워지고, 할 수만 있다면 하룻밤 오손도손 이야기하여야 정이 더욱 깊어지는가 보다. 밥을 먹으면서 친밀감이 훨씬 더해져, 사적인 이야기, 취업을 위해 면접 본 이야기 등도 같이 나눈다.

그런데 나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나가면서 집안 일과 아들의 교육을 그의 친구 멘토르(Mentor)에게 맡긴 것처럼, 나에게 주어진 ‘멘토’로서의 역할을 잘할 수 있을까? 멘토르는 오디세우스가 전쟁에서 돌아올 때까지 왕자 텔레마코스의 친구이자 스승, 상담자로, 때로는 아버지가 되어 그를 잘 돌보아 주고 이끌어 주었다. 그렇다면 나는 ‘멘토’로서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담 상대자 또는 선배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 진정한 멘토는 단순히 지식과 경험의 전달자가 아니라 때로는 쓴 소리도 하면서 그들이 올곧게 서서 앞으로 잘 걸어갈 수 있도록 북돋아주는 존재이리라. 업무나 지식 면에서는 따끔하게 충고하면서도, 인간적으로는 한없이 따뜻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도 꺼내 의논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멘토이지 않을까?

법원에 근무할 때에도 업무처리에서는 한없이 깐깐하시고 철두철미하게 사소한 실수까지 집어내시지만, 업무를 떠난 자리에서는 늘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부장님이 존경스러웠다. 정약용도 귀양지에서 만난 제자 황상의 배움에 진전이 있으면 기쁨을 참지 못해 칭찬을 쏟아 내다가도 공부를 게을리하거나 예의범절에 어긋나면 다시 안볼 것처럼 불벼락 호령을 내려 바로 잡아 주었다. 황상이 학질(말라리아)에 걸려 여러날 서당에 나오지 않자 ‘학질 끊는 노래’를 지어 보내며 제자에 대한 애정을 절절히 표현하다가도, 황상이 신혼의 단꿈에 빠져 공부를 게을리하자 작심하고 ‘내외가 따로 자라’는 글을 써서 보낸다. 한창 깨가 쏟아지는 신혼부부에게 각 방을 쓰라니, 이럴 수가? 그러면서도 결혼한 황상에게 자식 소식이 없자 한약을 처방하여 주고 드디어 출산 소식이 들리자 “네 아들은 내 손자다”라고 선포한다. 이쯤 되면 스승과 제자, 멘토-멘티의 관계를 넘어 가히 ‘삶을 바꾼 만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변호사들 대부분은 사무실 내에서 시니어-주니어 또는 대표변호사-소속변호사로 누군가와 멘토-멘티의 관계에 있다. 그 가운데 한쪽이 끊임없이 요청과 주문사항을 쏟아내는 일방적인 관계는 노우, 서로의 세계를 열고 함께 성장하는 관계는 예스!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멘토이지만, 동시에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멘티로서 이중적인 위치에 서 있다.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세상을 향하여 호기심 가득한 눈을 뜨고 있는 새내기 변호사들을 오히려 내가 멘토로 모시고 그들의 창의성과 발랄함을 멘티의 심정으로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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