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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기자실]검찰, 그리고 슈퍼맨식 판타지
윤호진 중앙일보 기자  |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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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6호] 승인 2017.07.10  10: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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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을 넘긴 나이지만 슈퍼맨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생생하다. 매력적이었다. 빨강과 파랑을 보색 매치한 쫄쫄이 옷을 아직도 탐내는 건 아니다. 지구를 1초에 7바퀴 반을 도는 그의 능력을 포기한지도 오래다. 그땐 몰랐지만 돌이켜 보건대 난 슈퍼맨이 실현하는 ‘정의(正意)의 속도’에 매료된 것 같다. 그의 주먹은 악당만을 정확히 가격한다. 정의는 불의의 현장에서, 우리의 눈앞에서 지체 없이 실현된다. 즉결 심판이다. 현실에선 찾아 볼 수 없는 ‘판타지적 정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판을 받고 있다. 형법 상 죄의 경중은 아직 선고되지 않았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그에 대한 탄핵(파면)을 결정했다. 여론은 그를 악(惡)으로 규정했다. 반사이익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돌아갔다. 자연스레 선(善)이 됐다. 역대 어느 정부도 이렇게 선명한 선악의 구도 속에서 출범하진 못했다. 문 대통령은 절대 선이라는 임시적 지위를 부여 받아 ‘판타지적 정의’를 휘두를 수 있게 됐다.

문 대통령은 예상대로 빠르고 강했다. ‘적폐’로 규정한 검찰 조직을 직접 뜯어 고치는 모양새를 취했다. 하필 의심의 눈초리를 받던 검찰·법무부의 수뇌부가 ‘돈 봉투 만찬’으로 구실을 줬다.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강등, 전보(5월 19일)됐고 이들의 빈 자리에 ‘국정원 댓글 사건’의 항명 검사 윤석열 대구고검 검사와 호남 출신 박균택 대검 형사부장이 앉았다. 인수위도 없이 급작스레 출범한 정부라곤 하지만 ‘법무부장관 인선&rarr검찰총장 임명&rarr검찰 정기인사’의 상식을 한순간에 깼다.

“임명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검찰 안팎에서 제기됐다. 검찰청법 제34조 제1항에 따라 법무부장관 대행(이창재 전 차관)이 검찰총장 대행(김주현 전 차장)의 의견을 듣는 ‘절차적 정의’를 따랐느냐는 것이다. 공허한 외침이었다. 이틀 뒤인 21일엔 법무 차관과 대검 차장이 갈렸다. 지난달 8일엔 “과거 중요 사건에 대한 부적정 처리 등의 문제가 제기됐던 검사들을 전보한다”며 검사장 여러명이 좌천됐다.

너무 빠르게 달린 부작용은 자기 검증 소홀로 이어졌다. 안경환 서울대 법대 교수가 성(姓) 관념 문제, 가짜 혼인신고 범죄 이력 등이 드러나 낙마했다. 이 여파로 법무부 장관·검찰총장은 여전히 공석이다. 자충수의 책임은 본인이 져야한다. 검찰 조직이 형식을 갖출 때까지 더 이상의 인사는 내지 말았어야 했다. 그럼에도 5일엔 ‘세월호 검사’ 윤대진 부산고검 2차장을 서울중앙지검 1차장에 발탁했다.

누가 어떤 절차를 거쳐 이 인사를 강행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검찰 조직 내엔 이미 청와대와 교감할 수 있는 검사들이 충분히 포진했다는 정도를 짐작할 따름이다. 민주적 절차, 절차적 정의가 소홀히 다뤄져선 안 된다. 그게 국정농단의 교훈이기도 하다. 슈퍼맨을 꿈꾸면 법과 절차는 다시 훼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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