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의원이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내용은 △대법원 상고심에서 당사자는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해야 하고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경우 재판장은 선임하도록 명하고, 이에 불응하면 상고장을 각하하며 △변호사를 선임할 능력이 없는 당사자를 위해 민사국선대리인을 선정한다.

민사소송에서는 당사자가 증거를 제출하고 공격방어를 하므로 당사자의 능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그래서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소송능력에 따른 불합리한 결과를 막을 필요가 있다. 특히 중대한 법령위반이 있어야 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는데 이를 입증하려면 법률전문가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형사소송과 헌법재판에선 이미 도입됐다. 피고인이 구속된 때, 미성년자, 70세 이상, 사형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기소된 때 변호인 없이 개정하지 못한다. 헌법재판소법도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지 않으면 심판청구를 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과거에도 시도되었으나 변호사가 부족하고 소송구조제도가 불완전한 상황에서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번번이 좌절됐다. 그러나 연 1500명 이상 신규 변호사가 배출되고 소송구조제도도 확충돼 상황이 달라졌다. 상고심 사건 수는 2011년 1만1500건에서 2015년 1만3865건으로 늘었고, 처리기간도 3.6개월에서 5.2개월로 늘었다. 필수적 변호사 변론주의 도입은 처리기간을 줄일 뿐 아니라 상고기각률도 낮출 것이다. 현재 소액사건을 포함한 민사단독사건의 상고기각률은 88% 이상이다.

독일은 민사사건 1심 및 고등법원과 연방대법원 사건, 가사사건, 행정사건의 고등행정법원과 연방행정법원에서 제소 단계부터 소송 종료 단계까지 변호사 대리를 원칙으로 한다.

프랑스도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변호사만 변론할 수 있으며 오스트리아도 기본적으로 변호사 필수주의를 택했다. 미국은 이를 채택하지 않지만 변호사가 100만명을 넘는 등 쉽게 소송 의뢰가 가능하므로 아주 경미한 사건 외에는 본인소송을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우리 민사재판의 비효율성은 법률전문가가 아닌 당사자가 직접 소송을 수행하는 데서 비롯된다. 본인 소송은 해당 소송뿐 아니라 그 소송의 지연으로 인한 다른 소송까지 연속적으로 지연시켜 법원의 업무부담을 가중시킨다. 법원은 재판진행에 관한 절차와 내용을 일반인 당사자에게 설명하기 바쁘고, 이러한 친절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결국 민사소송에서 지켜야 할 일정한 방식이나 기간에 관한 소송지식이 부족한 당사자들의 미숙한 대응으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필수적 변호사 변론주의 도입은 불필요한 소 제기를 방지해 사법절차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승소가능성이 없거나 당사자들이 감정에 치우쳐 제기하는 사건을 변호사가 사전에 거를 수 있고 효율적 소송준비를 통해 심리 집중과 신속한 절차진행이 가능하다.

필수적 변호사 변론주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목표로 한다.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보다 국가의 사법시스템 향상 및 국민의 재판청구권 보장 실질화라는 측면에서 추진돼야 하고 이는 국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사법적 권리다. 변호사 보수를 부담할 정도의 경제적 능력이 없는 경우 민사국선대리인 제도 도입으로 해결할 수 있다. 대한변협의 역점사업이기도 한 법안 발의를 환영하며 최종 통과되기를 바란다.

* 위 칼럼은 6월 29일자 파이낸셜 뉴스 ‘여의나루’ 코너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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