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사회가 때 이른 폭염만큼이나 뜨겁다. 지난 2~3월 법원행정처의 국제인권법연구회(이하 ‘인권법연구회’) 활동 방해 의혹에서 시작된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이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맞물려 증폭되고 있어서다. 판사들은 중지를 모으겠다며 지난 6월 19일 사상 3번째 전국법관회의를 열었지만 회의가 대표성 시비에 휘말리면서 사태는 ‘양승태 대법원장 퇴진론’과 ‘법관회의 월권론’의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인권법연구회 사태를 계기로 공세에 나선 법관회의 주도세력의 문제제기가 과거 다섯 차례 사법파동과 다른 점은 스스로 ‘대법원장+법원행정처’에 맞서는 ‘대항권력’형성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각급 법원 판사회의를 거쳐 100명의 판사 대표들을 한 자리에 모았고 법관회의를 상설화하겠다고 결의했다. 여기까지는 신선했다. 과거 소수 판사들이 전격적으로 연판장을 돌리거나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대법원장이 화들짝 놀라 수습에 나설 수밖에 없게 했던 ‘파동’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법관회의는 핵심 의제를 ‘사법행정의 미래’가 아닌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에 두고 스스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인권법연구회 사태를 사실상 재조사하겠다고 나섰다. 또 회의에선 법관회의를 향후 사법행정 전반에 대한 의결기구로, 하부조직인 각급 법원 판사회의는 사문분담 등을 스스로 행사하는 기구로 발전시키자는 방향이 제시됐다. 판사사회 내부 정치를 활성화해 여기서 형성되는 권력으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독점한 사법행정 권력을 분점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움직임이 국민들에게 던지는 화두는 ‘판사들에게 일상적 정치를 허할 것인가’이다. 국민은 또 “그러면 더 나은 재판을 받게될 것인가”라고 물을 것이다.

법관회의 주도세력은 ‘인사권 독점+정량적 근무 평정 → 주요 보직 ‘코드 인사’ → 판사들의 눈치보기 → 판결 또는 사법부의 보수화→ 국민의 피해’라는 일련의 인과관계가 성립한다고 확신하고 있는 듯 하다. 증거는 뚜렷하지 않지만 이들의 경험칙이 진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사권 분산+다수결에 의한 인사 → 인사적체 및 근무지역 및 보직 배분의 난맥상 가중→ 판결의 적정성·안정성·신속성 저해 → 국민의 피해’라는 우려에도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

어떤 경우에도 침해되는 것은 ‘국민의 재판을 받을 권리’이지 판사들의 안위가 아니다. ‘코트넷’과 판사들의 술자리를 장(場)으로 하는 논란이 이제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뭔가 바꾸려는 자들은 스스로 공론의 장으로 나와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판사들이 깔아 놓은 멍석에 곧 정부와 국회가 임명권과 입법권이라는 칼을 차고 밟고 들어오게 된다. 법복이라는 익명성에 숨어 임기 두달 남은 대법원장을 때리느냐 지키느냐에 골몰하다가 어떤 판사도 원치 않는 결말에 닿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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