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어찌 하다 보니 변호사 16년 차가 되었다. “변호사님은 무슨 법을 주로 다루십니까?”라는 질문을 종종 받게 된다. 엔터테인먼트법을 주로 한다고 대답하면 상대방의 반응은 “아, 참 재미있겠다”라는 것이다. 엔터테인먼트사업가는 모르겠다만, 엔터테인먼트법을 다루는 법률가는 재미있는 직업이라고 하긴 다소 어렵다. 엔터테인먼트법도 결국은 딱딱한 하나의 법률 분야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엔터테인먼트법을 주로 다루는 변호사로서 엔터테인먼트사업 종사자라도 된 듯이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 하나 있긴 하다. 바로 법정드라마와 같이 법적 요소가 깊이 관여된 작품을, 그 제작 과정에서부터 검수하는 자문을 제공하는 일이다. 때로는 드라마 시나리오를 쓰던 작가님들이 갑자기 찾아오기도 한다. 이 부분이 말이 되는지, 법률적으로 맞는지 검토해달라는 것이다. 이런 자문을 제공할 때는 작품의 스토리 전개에 참여하게 되니 마치 나 자신이 작가가 된 듯한 뿌듯함과 즐거움이 있다. 가끔은 스토리의 중대한 부분을 수정하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작가가 이미 충분히 조사를 해서 거의 문제 없이 쓴 작품에 법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부분이나 재판실무 내지 수사실무상 자연스럽지 않은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고 살짝 손보는 정도의 아주 경미한 터치에 불과하다. 그래도 그 뿌듯함은 말로 할 수 없다. 법률자문을 하다 말고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 엉뚱한 충동이 불쑥 고개를 쳐들기도 한다. 이 참에 한국의 존 그리샴이 되어 볼까 하는 무모한 야망을 품고 잠시 설레기도 한다. 딱딱한 변호사업무에 이만한 활력소도 없겠다 싶다.

또 반대의 경우가 있다. 법정소설을 쓰고자 하는 작가에게 소재를 제공하는 일이다. 변호사로 일하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사건을 처리한 경험이 있는지, 법정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없었는지 등 나의 변호사 생활 가운데 있었던 경험을 소재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건 법률자문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일이긴 하다. 그리고 나중에 은퇴하면 내가 소설화해 볼까 생각했던 소재를 털리는 것 같아 마음 한 편이 허전해 지기도 한다. 어차피 마음만 먹고 생각만 하지 실천에 옮길 것 같지도 않았던 그 소재를 넘기고, 마치 대단한 나만의 영업비밀을 공개한 것처럼 어처구니없이 아쉬워하기도 한다.

진짜 과학에 기초한 최초의 블록버스터라는 평가를 받은 영화 인터스텔라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도 캘리포니아공대의 이론물리학자 킵 손 교수의 자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과 ‘양자역학’을 소재로 한 놀란 감독의 새 영화에 또다시 자문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 변호사 업계에도 로스쿨 출신의 다양한 재원들이 공급되고 있다. 연극영화학과나 음악대학, 애니메이션 등을 전공하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친구들도 더러 눈에 띈다. 또는 물리학이나 의학을 전공한 후 변호사가 된 친구들도 상당수 있다. 그들이 변호사로 일하는 가운데 원래의 전공을 살려 법과 다른 분야를 융합한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를 만들어낼 미래를 상상해 본다. 이제 머지 않아 단순한 법률자문만 제공하는 일은 인공지능(AI)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는 예측이, 아니 믿고 싶지 않은 예언이 자주 기사화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 변호사들이 아니고선 할 수 없는 자문의 영역을 많이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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